Tumgik
#음악가
ariarifanclub · 1 year
Text
Available on all Major Streaming Services: Aria.J’s ‘Falling Into the Moon’. Listen Now!
모든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용 가능: Aria.J의 '달에 빠지다'. 지금 들어봐!
17 notes · View notes
iamkenlee-blog · 4 months
Text
As Erhosoun Gia Ligo
2000년대 중반 무렵, 땅고에 덕질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간보던 시기에 아무래도 고탄 프로젝트, 바호폰도 탱고 클럽, 까를로스 리베딘스키 같은 땅고 일렉트로니카 장르가 먼저 눈에 들어옴.
그때 그리스 음악가 이름도 몇 명 알게 됐다. 대표적으로 '네펠리의 탱고'를 부른 하리스 알렉씨우(Haris Alexiou), '레인 탱고'를 만든 스테파노스 코르콜리스(Stefanos Korkolis), 그리고 지금 썰 풀려고 하는 '잠시 동안(=Gia Ligo)'을 만든 알렉시스 칼로폴리아스(Alexis Kalofolias)와 타노스 아모르지노스(Thanos Amorginos).
당시만 해도 구글 및 유튜브가 오늘날 같지 않아 자료 검색하기가 어려워 음악 몇 개 찾아 듣고는 거의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문득 생각나서 업데이트할 겸 찾아 봄.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지아(Gia)' 때문에 '지아 리고'를 사람 이름인 줄로 알았는데, 그리스말로 'για λίγο'라고 쓰고, 발음은 "야(알)리고"에 가깝고, "잠시 동안"이란 의미였다.
샘플링에 사용된 여가수 목소리는 다나이(Danai)란 분으로, 원곡은 '잠깐만 와줘(=As Erhosoun Gia Ligo)'였다. 이 노래는 2014년에 발매한 'Authentic 78 rpm Recordings 1946-1957, Vol. 2'란 음반에 있었고, 유튜브에 Vol.1, 2가 모두 올라와 있어 들어보니 내 취향을 저격한 숨은 보석 같은 명곡이 섞여 있더만.
다나이는 1913년생으로 본명은 다나이 스트라티고풀루(Danai Stratigopoulou)이고, 가수, 작가, 대학 교수였다고 한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와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네루다 작품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 하신 듯.
youtube
youtube
3 notes · View notes
yangun143 · 2 years
Text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왜 열 몇 곡이 담긴 앨범을 내느라 고생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앨범을 만들려고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앨범은 여전히 활동의 이정표 같은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프로젝트 앨범이나 싱글을 꾸준히 내왔어도 사람들이 다음 앨범이 언제 나오는지 묻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나는 쇠퇴한 문화란 아주 사라지기보다 그저 압축 파일처럼 축소되어 구석에 간직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거라면 잘 축소해 특유의 매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돌고 도는 거라 언젠가 꼭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은 세상의 어느 쪽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세상의 변화를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무언가가 살아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김목인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중에서.
23 notes · View notes
dreamer-hangugeo · 2 years
Photo
Tumblr media
𝐒𝐢𝐧𝐨-𝐊𝐨𝐫𝐞𝐚𝐧 𝐕𝐨𝐜𝐚𝐛𝐮𝐥𝐚𝐫𝐲 Hanja characters 가 (家) - Meaning: Expert 전문가 (n): expert, specialist 작가 (n): writer, author 건축가 (n): architect 소설가 (n): novelist 각본가 (n): playwright, scriptwriter 정치가 (n): politician 화가 (n): painter, artist 조각가 (n): sculptor 사진가 (n): photographer 음악가 (n): musician 만화가 (n): comics artist, cartoonist 평론가(n): critic, reviewer ❤️
Kindly Visit My Blog Here
Available Products Here
Available Korean Writing Notebook Here
15 notes · View notes
sj-in-musicnote · 2 years
Text
<Geography> Tom Misch
Tumblr media
톰 미쉬의 음악은 도시의 여백을 만끽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여가가 되어줄 것 같다. 재즈 퓨전과 젊은 감각의 힙합 비트가 혼합된 배경 사운드에 공예가의 그것 같은 섬세한 기타 리프, 그 위로 단정한 보컬이 더해져 눈부신 조화를 이룬다. 석양으로 물든 금빛 거리를 보는 순간처럼, 이른 저녁의 시간이 선사하는 여유와 부드러움에 취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결국 기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음악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즈의 숨결에 목말랐던 그에게 아카데믹한 환경은 그리 견딜 만한 것이 되어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음악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약간 ‘반골 기질’ 같지만 셀프-데뷔와 메이저 자본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는 그러한 가치들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을 반증하는 것 같다. 예술가 집안이라는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누나 로라도 음악가이고 어머니 캐롤은 비주얼 아티스트로 이 앨범의 아트웍을 담당했다. 
2012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린 이후 2018년 정규 앨범 <Geography>를 내놓았다. 그전에 나온 <Beat Tape 1-2>에서는 칠아웃(chill-out) 무드의 감성적 비트 메이킹 컬렉션을 구축했고, <What Kinda Music>에서는 재즈 드러머 유세프 데어즈(Yussef Dayes)와 함께 앰비언트 성향의 실험적 재즈 음악을 탐구하며 음악적 지평을 더욱 확장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관성적으로 그를 단순히 ‘재즈 기타리스트’의 범주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Geography>는 그의 음악성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도 보편적으로 듣기에도 좋은 앨범으로 눈길을 끈다.
Before Paris는 짧고 간결한 스케치의 인트로 곡이다. 도입부의 의미심장한 내레이션과 함께 순식간에 무언가가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찰나를 묘사한 듯하다. 이 메시지는 재즈 트럼페터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의 인터뷰에서 가져온 샘플로 예술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려준다. 돈을 좇아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할 수 있는 행위로서의 예술을 말한다. (*하단의 전체 해석 참조)
인상적인 바이올린 리드와 뒤를 잇는 베이스의 그루비한 멜로디. 여백과 감흥, 장식이 서로 충돌하며 경쾌하고 유쾌해지는 South of the River. 홈비디오들을 대충 연결해 편집한 것 같은, DIY 느낌의 뮤직비디오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만의 춤과 자유로운 제스처를 보여준다. 
Movie는 무심결에 듣고 즉각적으로 끌려버린 곡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발췌한 내레이션과 늘어진 템포 사이를 유영하는 듯한 블루지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이 곡은 알면 알수록 놀라워지는 곡이기도 하다. 그것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이 곡에 관해 말해야 하는 이유인데, 도입부 내레이션은 옛 고전 영화 <밀회(Brief Encounter)> 스크립트의 일부로 톰 미쉬의 누이 폴리(Polly)의 목소리로 녹음한 것이다. 뮤직비디오 속에 상영되는 흑백 영화의 조각들은 그의 조부모의 사적이고 사소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지켜나가기도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필름은 연인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존속을 일상에 대한 포착으로 담아냈다. 사랑을 지켜낸 흔적인 옛 필름이 그에게 음악적 영감으로 작용했다. 유난히 느린 템포를 가진 Movie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고전의 품격을 역으로 시사하는 것 같다.
라틴 재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It Runs Through Me에서는 힙합 그룹 De La Soul이 참여해 랩을 들려주기도 한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기타 리프도, 어쿠스틱 피아노로 마무리되는 후반부까지 탄탄한 구성감을 유지하는 흥미로운 트랙이다. 그러니까 그의 음악적 요소들을 하나씩 따로 떼내어 분석하면 그 기원에 해당하는 특성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러 장르를 하나로 뒤섞어 버렸는데 개별적 장르 본연의 색채를 그대로 가져왔다기보다는 톰 미쉬만의 음악적 필터를 거치며 기입했기에 서로 다른 그것들이 아주 조화롭게 들린다. 그래서 그의 음악 속에서 단순히 그를 재즈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의 범주에 머물게 하지 않는, 자신의 음악을 세심히 다듬어내는 음악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능력도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악이 도시 속에서 여러 개의 길로 흘러간다면, 어떤 음악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사이에서 절규를 하는 것 같고, 어떤 음악은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어떤 음악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순간처럼 흥미진진하고 또 어떤 음악은 문득 혼자인 나를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위로 하는 음악이 얼마간 내 곁에 와 머물 ���도 있다. 톰 미쉬의 음악은 어떤 길로 흘러갈까? 도시의 여러 갈래길 가운데 낭만으로 물든 길, 꽃이 피어난 길.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우리는 아는 길… 어떤 길이든 당신만의 것이 되기를.
―Before Paris 중에서
Starting to trying to be a musician or artist
Something like that
Because you wanna make money
Because you wanna do a job
That's, that's the wrong way
You have to do this because you love it
And it doesn't matter if you broke
You still gon' do it
I mean, I go out to jam sessions
And I play regardless of whether I'm getting a check or not
It's, it's about whether I
Uh you have to love this thing, man!
You have to love it and breathe it and
It's your morning coffee
It's your food
That's why you become an artist
Art is a mirror of society, you know
음악가, 예술가 그런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은
많은 돈을 얻고 싶거나
직업을 갖고 싶은 게 아니죠
그렇다면 잘못된 길일 거예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우선 당신이 당신의 예술을 사랑해야 하죠
부서져도 상관없어요
계속할 거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잼 세션에 나갈 때
거기에서 연주해서 내게 어떤 보수가 주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당신은 이걸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고 호흡해야 하죠
그건 모닝 커피와 같고
매일의 양식과 같죠
예술가가 된다는 건 그런 거예요
예술은 사회의 거울이에요
[참조 사이트]
https://www.nme.com/blogs/nme-radar/tom-misch-loyle-carner-geography-2284028
https://www.promonews.tv/videos/2017/11/21/tom-misch-movie-joshua-osborne/50599
3 notes · View notes
fybriankang · 2 day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day6_kisstheradio: 🌙 240507 나상뮤직샵 천재 음악가 나원숙 쥔장님과 강단 있는 디제이 영케이와 함께 한 즐거운 음악교실 😋🩶 두릅두릅 대추 베이비〰️🎶 오늘은 ‘심플 이즈 더 베스트’ 반복되는 가사에 강한 중독성을 가진 음악들만 쏙쏙 골라 들어봤어요🎧 #데이식스의키스더라디오 #데키라 #영케이 #나상현 #나상현씨밴드
0 notes
ballooneedle · 18 days
Text
0 notes
helicopterseoul · 19 days
Text
Tumblr media
Joyul - Earwitness Remix (Helicopter Records / Psychic Liberation; 2024)
SIDE A
1. A Stage (Ulla remix)
2. Marginalia (Lucy Liyou remix)
SIDE B
3. Prayer’s stone (Aki Tsuyuko remix)
4. Backstroke (Demo)
전자음악 기반의 음악가,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조율의 첫 정규 앨범 Earwitness의 리믹스 트랙을 10인치 레코드로 제작한 Earwitness Remix. 정규 앨범을 레코드로 제작할 당시 사정상 수록되지 않은 미국의 음악가 Ulla, Lucy Liyou, 일본의 Aki Tsuyuko가 앨범의 수록곡을 하나씩 택해 만든 3곡의 리믹스 트랙과 Backstroke의 데모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Makoto Oshiro의 마스터링, A Studio A(이재환)의 디자인을 통해 Earwitness Remix의 레코드 작업이 완료되었다.
TRACKS BY ULLA, LUCY LIYOU, AKI TSUYUKO, JOYUL MASTERING BY MAKOTO OSHIRO DESIGN BY JAEHWAN LEE(A STUDIO A)
2024 HELICOPTER RECORDS & PSYCHIC LIBERATION HCLP0004PLIB0021.5
0 notes
iamkenlee-blog · 4 months
Text
Tumblr media
"입 닥치고 춤이나 춰"
2000년대 초 한국에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청담동에 위치한 디자인 사무소를 1년 정도 다님. 돌이켜보면 개발자 몸값이 최고조일 때 엉뚱한 데서 별 성과도 못 내고, 사측과 나 사이 팀웍이 맞질 않아 둘 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또 하나 고역은 매달 회식을 꼭 나이트클럽에서 하더라고. 음악은 절대로 내 취향 아님 + 근본 없는 막춤 출 줄 모름 + 덕후 기질 인간에게 부킹이 가당키나 하냐고. 더구나 싸구려 양주와 과일 안주에 붙은 계산서 볼 때마다 돈이 너무 아까워 한숨만…
근데 1990년대 중후반 무렵에도 약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음악 동호회 사람들과 홍대 주변을 자주 배회했는데, 얼터너티브롹 유행이 저물고 나��� 인디밴드, 힙합, 테크노가 거의 동시다발로 각자 영역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내 덕질 분야는 오로지 재즈뿐이었지만, 무리에 이끌려 여기저길 돌아다님. 언뜻 기억나는 곳으로는 드럭, 푸른굴양식장(나중에 마스타플랜으로 바뀜), 마트마타, 명월관 같은 곳들… 나이트클럽과 다른 점은 음악은 듣기 괜찮았다는 거지만, 여기도 막춤 추거나 헤드뱅잉 하는 애들이 있어 적잖이 당황.
어쨌든 따라다닌 덕분에 테크노 장르에 관심이 좀 생겼는데 때마침 서점에 '입 닥치고 춤이나 춰'란 책이 나옴. (신현준 외 3인 공저) 테크노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와 뮤지션을 소개한 책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유튜브가 없어 책만 읽고 막상 음악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책장을 뒤졌지만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길래 서울 시내 도서관 검색했더니 남산 도서관, 개포 도서관 딱 두군데 나오더만. 하긴 나 같은 사람 아니면 이런 책을 누가 찾겠냐 싶기도 하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책에 소개한 음악을 유튜브에서 죄 들어볼 수 있게 돼 틈틈이 다 들어보려고 음악가 이름을 따로 정리하는 작업 하면서 간만에 케미컬 브라더스, 프로지디, 오비틀,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 등등을 들으니 그 시절 홍대 생각이 나더만.
간혹 밀롱가에서도 술판을 질펀하게 벌이는 무리가 있던데, 내 눈엔 나이트클럽에서 놀던 습관을 밀롱가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어디서 어떻게 노는지는 각자 맘이긴 하겠으나 나는 이런 분들과는 관심사가 전혀 달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어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땅고 역사가 화류계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리면 그들이 전통(?)을 계승한 거고, 나 같은 음악 덕후가 변종이겠지만서도.
3 notes · View notes
audiophil · 2 months
Text
0 notes
johnsmj · 5 months
Link
습열조리법 중 끓이기, 건열조리법 중 부치기 보여주는 영상. 음악: A little trip 음악가: Xuxiao URL: InShot. source
0 notes
sj-in-musicnote · 6 months
Text
Tumblr media
<Quelqu’un m’a dit> Carla Bruni
모델로 활동하던 카를라 브루니가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때는 1997년으로 서른 무렵이었다. 10여 년의 모델 활동을 마무리 짓고 가수 데뷔를 준비하면서 싱어송라이터 줄리앙 클레르(Julien Clerc)에게 직접 쓴 가사를 보냈다.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영향 덕분에 그녀로서는 이런 곡 작업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하더라도 제2의 꿈을 실현하는 구체적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카를라 부르니의 데뷔 앨범 <Quelqu’un m’a dit>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앨범은 그녀의 자작곡들과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La noyée(침몰한 여인), 이탈리아 작곡가 지노 파올리(Gino Paoli)의 곡을 프랑스어로 개사한 Le Ciel dans une chambre(방 안의 천국) 두 개의 커버를 포함하고 있다.
<Quelqu’un m’a dit>은 유럽에서 크게 히트했고 레코드 판매고도 높았다. 마치 지니고 있던 회색빛 영혼을 잘 드러낸 듯 특별히 멋내지도 않고 수수하게 다듬어낸 포크 수작이었다. 첫 트랙 Quelqu’un m’a dit(누군가 내게 말했다)에는 작가주의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Leos Carax)가 가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Tout le Monde(모든 사람)를 포함해 두 편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그가 촬영했다. 드니 라방(Denis Lavant)이 출연했던 그의 영화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그리고 최근의 작품 <홀리 모터스> 등을 떠올려 보라. 레오 카락스의 작품 이미지들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이 뮤직비디오들은 짧은 영상이지만 장소나 톤, 인물을 둘러싼 여러 디테일 면에서 충분히 그의 영화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물론 그의 영화 어법은 카를라 부르니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색채와는 조금 거리가 있게 느껴지지만, 두 사람의 협업이 그 당시에 이런 결과물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제법 눈길을 끈다. 아직 색채가 선명하지 않은 시기에 신인으로서 그녀는 어떤 색으로든 물들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더해온 색채들과 그 흔적들을 둘러보면서 그녀의 음악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Tumblr media
한편 앨범이 성공적이었던 만큼, 수록곡들이 영화나 광고 등에 쓰이며 원곡을 재확산하는 데 크게 동조했던 사실도 눈에 띈다. 스웨덴 의류 브랜드 H&M 광고와 영화 <500일의 썸머>에 그녀의 곡이 삽입되면서 음악팬들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특히 <500일의 썸머>는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어필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하는 그녀의 음악을 듣다 보니 프랑스의 전통적 음악 혹은 샹송, 생의 서글픔이 깃든 유럽 어느 구석의 발라드, 보컬의 역량이 특색을 이루는 미국 재즈 보컬 음악들보다도 조니 미첼의 <Blue>나 쥐빌레 바이어의 앨범 <Colour Green> 등이 먼저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앨범은 절망적이고 어두운 경향이 있으니까, 청춘의 사색과 비관주의 같은 것을 동반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Tout le Monde 같은 노래에서, 우리 모두의 절망적 경험이 유사하다는 식으로 위안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교감을 경험토록 하고 더불어 따스함을 전달한다. 그런, 특유의 온화함 때문인지 그녀의 노래는 우리나라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같은 제작진의 후속작 <봄밤>의 사운드트랙에도 삽입되어 특별히 친숙하게 남게 되었다. 태미 와이넷(Tammy Wynette)의 원곡 Stand by Your Man과 <봄밤> 수록곡 Spring Waltz 둘 모두 위로의 정서를 앞세우는 편으로, 제법 통속성이 있는 드라마라는 장르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게다가 그녀의 사랑 노래는 노래 이상으로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로맨스가 그녀의 삶에 현실—프랑스 대통령이던 사르코지와의 결혼—로 일어났으니까.
그런 상황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녀의 음악은 내러티브를 가진 여러 영상물에 쉽게 동화될 만큼 보편적인 힘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주로 로맨스물인 영화에서 배경 음악의 기능으로서 손색이 없다. 쉽게 매치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들로 인해 결코 영화에 어울릴 수 없는 노래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어디에도 잘 섞일 수 있지만 섞인다고 해서 개성이 흡수되어 사라져버리지도 않는다. 보편적인 언어로, 보편적 이야기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복잡한 장치나 수식 없이, 기타와 목소리의 순수성 그대로의 힘으로 풀어낸 <Quelqu’un m’a dit>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않았을까. 조금 어둡긴 해도 싫어할 이유가 별로 없는 음악. 여전히 나무로 된 다락 공간이나 기타의 낭만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하는 컨셉 아닌 컨셉. 이런저런 계산보다 기본에 충실한 구도가 말하자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인 옷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을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재생산해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거나 취하도록 하는 것은 새롭고 기발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글을 길게 썼지만, 어떤 노래들은 가사를 몰라도 듣기 좋고 모르는 채로 즐기며 나만의 ‘방 안의 천국’을 만끽하게 만든다. 그런 자유를 여기에서 보았던 것 같다.
0 notes
lemon2sang · 6 months
Text
Tumblr media
(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Sergei-Rachmaninoff-Critical-Rebecca-Mitchell/dp/1789145767 )
1943년 라흐마니노프의 사망 직후에 칼럼니스트 레너드 리블링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알았던 러시아의 비극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는 깊은 우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그의 얼굴, 특히 두 눈에 잘 드러났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시대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자, "감미로운 낭만주의의 과거와 단단한 현대의 리얼리즘 사이"를 잇는 드문 연결 고리였다. (p11)
동료 작곡가이자 동포였던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라흐마니노프를 "6피트 반(약 198센티미터)짜리 우거지상"이라고 불렀다. 아닌 게 아니라,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 이주한 직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미소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근엄하고 엄숙한 얼굴 일색이다. 그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손에는 모자를 든 채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사진들에 나타난 우수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은 서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만 같다. 낡은 작곡 방식을 떨칠 수도 없고, 새로운 작곡 방식을 습득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음악 양식을 느껴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지만 이는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알고 있다. 나비부인은 남편을 위해 순순히 개종하였지만, 나는 내가 믿어오던 음악의 신들을 냉큼 버리고 새로운 신들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러시아에 닥친 재앙과도 같은 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음악이, 그리고 모든 음악에 대한 나의 반응이 정신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늘 느껴왔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명을 향한 끊임없는 순종이었다.' (p12)
14
'키가 훤칠하고 근엄하며, 몸가짐은 귀족적이고, 콘서트 무대에서는 냉정한 위엄을 발산한다. 저 강철 같은 손가락과 탄탄한 이두박근을 보면 거대한 불협화음을 앞세운 모더니스트의 음악을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섬세하고 커다란 감정,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노래하는 음색이 들려온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은 마음속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퍽 효과적이었다. 1942년 발간된 <타임>지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활동한 동안 누적으로 250만 달러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의 음악은 콘서트 프로그램과 음악원 담장 안, 그리고 시중에 발매된 음반에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고, 이는 곧 가슴이 미어질 듯 감정적인 그의 음악 양식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비록 20세기 중반에 음악적 '현대성'을 표방한 대표 주자들은 반음계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선율이 전면에 부각되며 화음이 복잡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혐오하였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의 팬들은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 던져진 자신들의 고생과 비애, 실패를 메아리처럼 표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8)
라흐마니노프는 철학적 토론에 직접 가담하길 꺼렸지만 철학적 논의가 그의 창조적 소산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다. 1919년 인터뷰에서 그는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음악의 세계에서 가장 지엄한 지배자는 바로 선율이다. 선율이 곧 음악이며, 선율은 또한 모든 음악의 필요불가결한 토대이다. 완벽하게 배태된 선율 속에는 그것에 고유한 자연스러운 화성과 그 화성의 발전 양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는 은 시대 작가들이 쓴 수많은 텍스트에 음악을 붙였으며, 러시아정교회 음악이 부흥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빌라 세나르에 보존된 그의 서재에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러시아 종교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를 포함하여 은 시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이 남긴 문헌의 러시아어 번역판이 간직되어 있다. (p20)
라흐마니노프를 그가 속한 시대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발히 활동했던 시대와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표상되는 미적 견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혁신과 실험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는(아울러 대중적 인기를 수상쩍게 여기는) 현상을 "모더니스트 담론"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라흐마니노프를 '진보' 혹은 '보수'의 프레임에 가두는 일은 그의 생애 내내 음악적 가치를 갑론을박하는 데 적용한 가치 기준을 그대로 빌려 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음악을 근본적으로 현대적인 것이되 반드시 모더니스트적이지는 않다고 규정한다. "모더니즘"을 "현대화의 객체뿐만 아니라 주체가 되기 위한 현대 남녀의 모든 시도"로 이해한 문화사학자 마셜 버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주장을 펼쳤다.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모험과 권력, 기쁨과 성장,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약속하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우리의 모든 정체성을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환경 속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단한 것들이 모두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p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는 현대의 끊임없는 영고성쇠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현대의 어떤 측면들은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융성하였다. 동시에 그가 창조한 가공의 러시아성에 뿌리박은 자아는 그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분투했다는 면에서 전형적인 현대의 산물이었다. (p22)
"새로운 종류의 음악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음악의 작곡가들은 느끼기보다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 한스 폰 뷜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음악을 '환희하게'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묵상하고 주장하고 분석하고 사고하고 계산하고 곱씹을 뿐, 절대 환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정신에 입각해 곡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대의 정신은 음악에서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곡가들로서는 사고는 가능하되 느낄 순 없는 음악을 엮어내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가 요구하는 표현은 사실과 문자의 장인인 작가와 극작가에게 맡겨두고 영혼의 권역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나의 견해를 물은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경우도 현대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현대음악은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는 음악입니다. 고사병에 걸린 채로 태어나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p23-24)
라흐마니노프의 젊은 시절 행보는 당대 문화계의 움직임과 발맞추었고 현대성에 의해 초래된 격동과 긴밀히 조응했다. 1917년 이후 그는 두 차례의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한 번은 자신의 조국을 등져야 했던 정치적 망명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전문 음악가 동아리 내에서 세를 굳히던 현대주의자들의 '미래파' 담론에서의 배제였다. 마음속 깊이 현대적이었던 그는 현대주의자들이 표방하는 미학을 삼갔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이 속한 시대의 모순을 표상하는 화신이 되었다. (p25)
"스승님께서는 리듬이 없고 문법과 구두점이 빠진 연주를 결단코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도 가장 거대한 예술적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커다란 음악적 토대가 되어주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제자가 어릴 때부터 “테크닉뿐만 아니라 해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곤 했다. (p44)
49
라흐마니노프의 근엄하고 엄격한 몸가짐과 표정은 무대 위에서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음악 예술에 헌신하는 자세-즈베레프의 문하에서 기숙하며 배양한 것이다-를 앞세운 그는 모든 공연에 진지하게 임했고, 불필요한 제스처나 극적 몸동작을 삼갔다. 훗날 라흐마니노프는 스스로 "85퍼센트는 음악가이고 고작 15퍼센트만 인간"이라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이미 음악원 시절부터 체화되어 있었던 셈이다. (p67)
지극히 유명세를 치른 음악인 만큼 많은 이가 작곡가에게 음악 외적인 작곡 동기는 없었는지 묻곤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종일관 부정적인 뜻을 밝혔고, 1910년에는 "나의 유일한 동기는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던 다급한 필요를 제외하면- 그저 아름답고 예술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뿐이었다"라고 확실히 매조졌다. (p77)
82 85
라흐마니노프 자신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이 교향곡은 사람들이 쓰고 이해하는 의미대로 퇴폐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고, 다만 확실히 약간 '새롭긴' 하다." 글라주노프의 지휘가 수준 이하였던 때문도 있었겠으나, 그로서는 곡이 새로워 초연이 실패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초연으로부터 18년이란 세월이 흐른 1915년에 그는 마리에타 샤기냔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스스로 음악가라 칭하고 음악 속에 담긴 불편함을 직시하길 꺼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혁신가의 월계관을 씌워줘야 마땅하겠지. 그런 이들은 선진적이며 독창적이라 불리겠지만, [나의] 혁신은 태내에서 목 졸리고 말았어." 샤기냔의 결론은 이랬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앓게 된 건 교향곡 초연의 실패나 그에 따른 실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병에 빠진 이유는 음악가로서의 미래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즉, 더 이상 혁신가로서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훗날 라흐마니노프가 '현대주의자들'의 음악적 실험을 적대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p86-87)
97 101 102-3 115-6 118-9 122-3
128, 9
이러한 움직임을 뒷받침한 인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는 아마도 러시아 사상가 겸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일 것이다. 예술이 이루는 기적에 관한 솔로비요프의 생각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성육신과 예수가 산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 변용같은 기독교적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인간의 예술적 창조성은 아름다움의 현현을 통해 물���세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그는 음악이 아름다움의 가장 "직접적이거나 마법적인" 표현이라면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내부적 상태가 사물의 진정한 본질 그리고 내세와 (혹은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연의 존재'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음악만이 가진 신비로운 힘에 대한 의견은 러시아에서 발간되던 문학·철학·미술 잡지에 자주 등장했다. 모스크바 출신의 음악가 콘스탄틴 에이게스는 솔로비요프의 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관객에게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까지 했다. 20세기 초반을 살던 솔로비요프의 추종자들에게 예술가-그리고 특히 작곡가-는 저들의 예술을 통해 물질적 세계를 영화하는 기적을 수행하는 이들로 비춰졌다. (p130-131)
러시아 상징주의 미술의 초기 사례인 미하일 브루벨의 <앉아 있는 악마>(1890)
140
라흐마니노프는 사회와 정치판이 극적으로 요동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1905년 2월 3일에 발표된 결의안에는 모스크바의 여러 음악가와 함께 그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오로지 자유로운 예술만이 삶에 진실한 예술이며, 오로지 자유로운 창작 행위만이 기쁨을 줄 수 있다." 우리 음악가들은 우리의 예술가 동무들이 발표한 이 멋진 문장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바이다. 만일 예술이 진실로 강력해지고 진정으로 거룩해지며 정녕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면 예술가 내면의 자기 인식과 인간 사회의 기본적 요구 말고는 예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인생의 손발이 묶인 경우라면 예술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없고 발언과 언론의 자유도 없는 국가라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생동하는 예술적 사업에 투신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국가라면, 예술의 소산 역시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 예술가'라는 칭호 역시 쓰디쓴 농담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우리는 자유 예술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권리라고는 없는, 현대의 부자연스러운 사회적·법적 환경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여건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그 길은 러시아가 근본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다." (p142-143)
145-6
154-5 167
"진정한 영감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면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면 외부에서 그 어떤 자극이 주어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술가 내면에 창조적 능력의 거룩한 불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장 훌륭한 시, 가장 위대한 그림, 가장 숭고한 자연이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아무런 쓸 만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 (p168)
169-171 (170)
175-7 179-180, 1
만년에 들어서는 소규모 피아노곡을 쓰는 일만의 어려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털어놓았다. "피아노를 위한 소품을 쓸 때는 장황하게 흐르지 않고 간결하게 응축해내야만 하는 주제 악상에 따라 곡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협주곡과 교향곡을 작곡할 때는 곡이 술술 써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모든 소품은 세심하게 살피고 근면히 노력한 산물입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을 하되 간결하고 알기 쉽게, 그리고 에두르지 않고 말하는 건 창조적 예술가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입니다. 복잡해지기보다 단순해지기가 더 어렵다는 걸 예술가는 오랜 경험 끝에 깨닫게 됩니다." (p192)
철학적 언어를 동원해 자신의 미적 가치 체계를 설명하는 일을 꺼린 라흐마니노프였지만, 그의 작곡 양식이 아폴로적 균형 감각의 지배를 받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음악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에 대조와 부조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음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부조화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인정사정없이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부단한 불협화음은 결코 예술이 아니며 절대 예술이 될 수도 없다" 하고 단언했다. (p193)
"내 유일한 영감은 -다소간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는 별도로 하고- 뭔가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 뿐이었다. 전주곡이란 그 본질상 절대음악이며, 아무리 작곡가의 팔을 비틀어도 전주곡을 교향시나 음악적 인상주의용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순 없는 법이다 ... 절대음악은 듣는 이들이 어떤 분위기를 느끼도록 유도하거나 암시할 순 있다. 그러나 절대음악의 주요 기능은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 형태의 다양함을 통해 듣는 이에게 지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바흐의 전주곡에서 작곡가가 느꼈던 분위기를 발견하려 애쓴다면 정작 음악에 담긴 가장 두드러진 아름다움은 놓치는 꼴이 되고 말 터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이자 음악의 목적은 음악 그 자체이다. 음악의 의미는 구체적 삶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바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던 모스크바의 음악 철학자 콘스탄틴 예이게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p194)
이제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스타일이 된 음악의 일면들은 음악 외적 요소와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고르지 않은 박자는 정교회 성가 선율을 떠오르게 하고, 종소리를 모방한 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죽음의 섬> 이후로 라흐마니노프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진노의 날' 모티프 역시 여러 대목에서 식별된다. 이처럼 여러 작품을 통해 공통으로 되풀이되는 음악적 단서들은 물리적 현실이나 특정한 경험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1906년 모스크바의 문예지 <황금 양모> 창간호에 나온 "예술은 상징적이다. 예술은 이미 그 안에 상징-유한한 것에 무한한 영원을 담은 것-을 품고 있다"라는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온당할 것이다. (p195)
라흐마니노프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선율과 풍성한 화음을 그만의 방법으로 배합한 음악에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 경험한 바를 긍정받는 감정의 분출을 경험했다. 집시들이 부르는 노래, 오페레타, 그리고 문화 엘리트층이 멸시하는 '대중적'인 여흥과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가 쓴 음악은 듣는 즉시 감정이 움직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은 그저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런 음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지로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호소했다. M. L. 첼리시체바의 회고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모든 이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고 다른 그 어떤 음악가도 건드릴 수 없는 심금을 건드려 소리나게 했다." (p197)
라흐마니노프의 열혈 팬이자 친구요, 뮤즈였던 마리예타 샤기냔. "나는 모든 게 무섭소. 생쥐, 쥐, 딱정벌레, 황소, 도둑이 무섭고, 강풍이 불 때마다 굴뚝이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도 무섭소.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것도 무섭고, 어두운 것도 무섭고, 기타 등등 무서운 것이 한둘이 아니오. 나는 퀴퀴한 다락을 좋아하지 않소. 다락에는 집의 정령이 기거하는 것 같소(그대는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지 않소!). 그렇지 않다면 낮에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을 텐데 말이요."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에게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조성 음악을 내팽개친 모더니스트들을 보고 내린 철학적 결론에 경악했으며, 반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성을 빼앗는 현대의 힘에 맞서 개인의 영역을 지켜낼 저지선을 발견했다. 철학에 대해 논한 장황한 글에서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단지 음악적 상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음악의 덮개를 벗겨 그 아래 숨은 상징을 찾아낸다"고 썼는데, 이는 음악(그리고 더 넓게는 예술 전반)을 초월적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로 여기는 은 시대에 널리 유행한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스스로의 예술성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하는 인간 자체를 들었다." 그녀는 "비단 예술(특히 회화와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상생활 역시 리듬을 잃고 있다면서, 그런 만큼 리듬이 뚜렷한 음악에 헌신한 라흐마니노프의 자세를 더욱 무겁게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99-200)
201
시인 콘스탄틴 발몬트 <불타는 건물들>, <우리가 태양처럼 되게 하소서> (p205)
207
220
'매우 감동적이고 불안정한 어조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레', 죽음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 예전의 나는 도둑, 강도, 전염병 등 모든 게 조금씩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것들��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죽음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삶이 끝난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저 썩어 사라지는 편이, 존재하길 멈추는 편이 좋을 텐데요. 하지만 무덤에 묻히고 난 뒤에도 끝이 아니라면 그건 무섭습니다. 내가 겁이 나는 이유는 불확실성이라는 미지수 때문입니다!" ' 이렇게 걱정하는 그에게 샤기냔은 기독교 신앙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안심시키려고 하자(참고로 샤기냔은 훗날 스탈린주의를 추종하는 운동가가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멸하기를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못쓰게 되고 늙어진 다음에는 스스로가 지긋지긋해집니다. 물론 나는 늙지 않았는데도 벌써 내가 지긋지긋하지만요. 그렇지만 만약 죽음 뒤에도 뭔가가 있다면 그건 정말 무섭습니다." (p226-227)
로베르트 슈테를 <크렘린 상공의 불꽃놀이> (p242)
253-4 255-6 (258) (260)
"대중을 상대하는 연주자 가운데 라흐마니노프만큼 연주 매너나 해석 면에서 의도적인 노림수를 두지 않는 이도 없을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때로는 유장한 해석의 기조에는 그 어떤 종류의 불필요한 장식이나 사족도 제거되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씨는 낭만적이고 매끈한 색채를 입힌 연주를 경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연주는 낭만파 시대의 화려한 캔버스보다는 조각품과 유사하다." (p261)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1929년 데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암피코 피아노 롤 녹음을 발매한 적이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2번> 음반. (p263)
265 268 274-5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제는 어깨를 누르는 짐의 무게를 느낍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그 짐이 이제는 그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 짐이란 바로 내게 조국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 젊은 시절 몸부림치며 모든 슬픔을 삼켰던 그곳,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손에 쥔 그곳을 나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내 앞에는 온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모두 열려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 조국, 러시아입니다." (p280)
1934년 4월 10일 빌라 세나르 (p285)
291 294-5
뉴욕에서 발행되던 러시아어 잡지 <뉴 러시안 워드>지에 게재된 요세프 야세르의 리뷰는 라흐마니노프의 이목을 끌었다. 야세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이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해온 '진노의 날' 모티프가 문득문득 나타난다고 썼다. 야세르와 만난 자리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보통 음악가들은 첫 두세 소절만 아는 [그건 라흐마니노프도 마찬가지였다] ... 이 유명한 중세 시대의 선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죽음을 상징하는 이 성가 선율에 평생토록 흥미를 보여온 라흐마니노프가 정작 그에 관련한 지식은 이전 낭만주의 작곡가들 (베를리오즈, 리스트, 생상스,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의 용례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 퍽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야세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라흐마니노프가 내린 결론은 더욱 놀랍다. "그처럼 자주 활용되는 성가 선율이, 게다가 한때 러시아정교회 성가집에 수록된 적도 있는 성가 선율이, 특징적이어서 쉽게 기억되는 레퀴엠 선율이 필요한 작곡가들 사이에서 그저 무언의 전통처럼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있음 직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관습이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머뭇거리며 "그래요, 관습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 하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라흐마니노프와 논의를 주고받은 야세르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선 '진노의 날' 선율은 라흐마니노프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특히 그의 만년을 괴롭히던 생각들에 대한 오랫동안의 해답 같은 존재였다. 둘째,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진노의 날' 선율 속에서 모종의 음악 외적 요소- 어쩌면 저 세상으로부터의 '호출' 같은-를 느끼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 이러한 무의식적인 감각을 오로지 자신의 내부에만 국한시키길 꺼리는 것 같아 보였다." (p296-297)
298-9 301-2 302-4
"연주회는 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내게서 연주회를 앗아가면 나는 시들고 말 겁니다. 통증이 있어도 연주할 때는 사라집니다. 종종 얼굴과 머리 왼쪽의 신경통이 스물네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연주회 전에는 마술처럼 없어집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요통 때문에 아주 고생했습니다. 무대 위의 피아노 앞에 앉은 상태에서 막이 올랐고, 연주를 할 때는 조금도 통증이 없었어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니 일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막을 내린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어요. 아뇨, 연주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일을 멈추면 시들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안 됩니다. ... 무대위에서 죽기를 바랄 수밖에요." (p306)
309
315 317-320 323-5 (324)
(328) 331 333-4
라흐마니노프는 현대 기술을 사랑했고, 색소폰 같은 현대 악기들을 탐구했다. 또한 여러 망명지를 겪은 것처럼 제정 러시아 말기의 시국도 경험하였다. 다시 말해, 사상과 혁신이 난무하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여건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같은 이유로 라흐마니노프는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의 음악과 정신은 1914년 부활절의 크렘린궁전을 담은 로베르트 슈테를의 그림, 즉 라흐마니노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옛 러시아'의 이상화된 박제이자 그의 벽에 걸린 뮤즈를 동경했다. 라흐마니노프 개인에게 보이는 이러한 모순은 현대성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셜 버먼은 현대 세계에 관한 글을 맺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서로 얽히는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자신 스스로가 영속적인 해체, 갱신, 곤란, 비통, 모호함, 모순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주의자라는 것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떻게든 익숙함과 편안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소용돌이의 리듬을 자신의 리듬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소용돌이의 격정적이고 위험한 급류가 허락하는 현실과 아름다움과 자유의 형태들을 찾아 헤매는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p336)
377-8=======
- 리베카 미첼 , ' 라흐마니노프 ' 중에서
1 note · View note
crookeddazemoon · 6 months
Link
손가락 그리퍼 기타 손가락 운동기, 6 단계 저항 회복, 물리적 도구, 환자용 손 강화기 Price: [price_with_discount] 총알 포인트: 1,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이상적】 손가락 강화제는 선수 (암벽 등반, 피트니스, 테니스, 야구, 복싱) 및 음악가 (기타, 베이스, 피아니스트 및 바이올리니스트) 의 손가락 강도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및 일상 가사 (운전, 타이핑, 쓰기, 작업 등). 선택할 수있는 2, 6 가지 저항 레벨】 실리콘 기타 핑거 엑서사이저는 6.6LB, 8.8LB, 11LB, 13LB, 17LB 및 21LB 를 포함한 6 가지 저항 레벨을 제공합니다. 그립 강도에 따라 적절한 레벨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3, 【고품질 소재】 우리의 손가락 들것은 고품질 실리콘 소재로 만들어져 안전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쉽게 찢어지지 않으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4, 【휴대용 및 경량 설계】 핑거 트레이너는 작고 가벼워서 체육관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여가 시간에 운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가락 연장기 운동기 손 운동하세요. 선택할 수있는 5, 6 가지 저항 레벨】 실리콘 기타 핑거 엑서사이저는 6.6LB, 8.8LB, 11LB, 13LB, 17LB 및 21LB 를 포함한 6 가지 저항 레벨을 제공합니다. 그립 강도에 따라 적절한 레벨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명: 손가락 운동기는 손가락의 힘과 이동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고품질 실리콘을 주 소재로 하여 찢어지거나 깨지거나 변형되기 쉽지 않으며, 체육관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습니다. 사양: 제품 이름: 손가락 운동기 재질: 실리콘 저항 레벨: 6.6LB, 8.8LB, 11LB, 13LB, 17LB, 21LB 색상: 검정 + 회색 포장 목록 손가락 운동기 * 1 손목 스트랩 * 1 참고: 조명 효과 촬영 각도 때문 제품 색상 차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window.adminAccountId=2639930036; https://nutriwave.site/%ea%b1%b4%ea%b0%95%ec%a7%80%ed%82%a4%ea%b8%b0-%ec%b6%94%ec%b2%9c/%ec%86%90%ea%b0%80%eb%9d%bd-%ea%b7%b8%eb%a6%ac%ed%8d%bc-%ea%b8%b0%ed%83%80-%ec%86%90%ea%b0%80%eb%9d%bd-%ec%9a%b4%eb%8f%99%ea%b8%b0-6-%eb%8b%a8%ea%b3%84-%ec%a0%80%ed%95%ad-%ed%9a%8c%eb%b3%b5/?feed_id=1864&_unique_id=655622168f30a #강화기 #그리퍼 #기타 #단계 #도구 #물리적 #손 #손가락 #운동기 #저항 #환자용 #회복
0 notes
a3musico · 7 month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에이3뮤지코 #A3musico #제작자
#Producer #Produtor
#뮤직프로듀싱 #작곡가  #Compoisitor
#DAW
#음악가  #Musico
#음향감독 #라이브음향 #음향엔지니어
#음원유통 
#제작자
#데뷔 #협업 #컨텐츠 #미디어
#debut #estréia #오디션 #Cooperação
#Cooperation
#popmusic
0 notes
ballooneedle · 7 months
Text
닻올림 연주회_172 그래픽 스코어 ‘닻올림 dotolim’
Tumblr media
일시: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5시 (관객 입장 시작 : 오후 4시 30분)
장소: 공간 ‘닻올림’
입장료
연간회원: 1만원 (연간회원 가입 안내 https://bit.ly/2XgZBQl)
예매 : 2만원 (예매페이지 https://goo.gl/e1EXD2)
현매 : 2.5만원
후원: 서울문화재단
자세힌 정보: https://www.dotolim.com/?p=8537&=1
Tumblr media
2009년에 Jason Kahn 제이슨 칸이 작곡한 그래픽 스코어로 같은 해 닻올림에서 류한길, 박승준, 진상태, 최준용, 홍철기, Jason Kahn이 연주, 녹음했다. 이듬해 2010년 레이블 벌룬앤 니들 Balloon and Needle 을 통해 발매된 음반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음악가 집단의 밀도를 강조하는 작곡을 하고자 했다. 여기서 밀도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종종 거칠기도 하고 또한 복잡하기도 한) 소리의 밀도와 우리의 증폭된 소리 덩어리를 간신히 수용하는 공간의 밀도 모두를 의미한다.” (제이슨 칸의 라이너 노트 중에서)
2023년 10월 닻올림에서 새로운 연주자를 초대해 ‘닻올림’을 재실현, 연주, 녹음한다.
당시의 녹음 현장의 기록 https://www.dotolim.com/?p=978
Ballon and Needle 의 CD ‘닻올림’ 소개 http://www.balloonnneedle.com/bnn25.html
Jason Kahn – dotolim / Bandcamp https://jasonkahn.bandcamp.com/album/dotolim
1 note · View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