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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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doh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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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줄 거라면 빌려주지 말아야 한다. 건넨 마음에는 이자가 없음을 알고. 던져 버리듯 돌아오지 않을 걸 알고. 나를 슬프게 만들어도, 준 만큼 내게 돌아오지 않아도, 그것이 그의 최선의 마음임을 익숙하게 여기며. 줄 거라면 떼어낸 나의 마음 구멍을 넘치게 채워 달라 조르지 않으�� 구멍 난 채로 건네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이기적임이 아닌 나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마음은 빌려주는 것이 아니니, 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부메랑과 같아서 내가 준 상처가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놓아준 행복 또한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부서지는 파도가 모래 알갱이를 가져가지만, 또 다른 파도가 그만큼의 알갱이를 가져올 것을 믿고.
연락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상대도 애타게 좋아했던 사람에겐 쩔쩔매며 연락을 기다렸을 것이다. 물론 관계의 지속 기간이 깊어졌음과 연락의 부재는 어느 정도 비례한다. 궁금한 것이 적어지고 서로의 일상이 어느 정도 파악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깝지 않은 관계에서 연락의 빈도는 꼭 마음의 빈도라는 것을 기억할 것. 갑작스러운 약속이 자주 잡히는 것은, 그가 충동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움은 곧 스며드는 것과는 반대 개념이다. 일상에 스며들지 못하는 관계는 사랑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음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만나서 받는 상처로 인해 큰 아픔을 가지고 살 때가 있다. 사랑을 좀처럼 마음에 두지 못하는 병이 생기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땐 사랑을 믿으려 노력하기보다, 잠시만이라도 도망가고 회피하고 방어하고 싶은 마음에 충실히 따라도 된다. 구태여 마음을 믿고 사랑을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꾸 등 돌려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람. 끊어진 것 같다가도 작은 힘줄이 남아 계속 이어지는 그런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을 믿게 만드는 사람’이라 말한다. 믿게 만들어 주는 사람. 그 어느 외면 속에도 굳건히 한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은행나무 같은 사람. 잠시 도피한 여행에서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느냐 웃으며 물어 주는 깊고 넓은 사람. 꼭 있을 것이다. 당신의 고장남을 이해해주고 보살필 줄 아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그러니 마음의 고장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해도 된다. 그게 고장 난 마음에 있어 가장 옳은 수리법이다.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 정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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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mental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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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pacity
회사일이 뜻 깊고 하기좋은 일일지 언정 다른 편의 자아실현을 욕심낼 수밖에 없어 사이드로 진행하는 일이 여러개가 되어버렸다. 자기긍정과 낙관으로 5월 초에 하는 오픈마이크 라이브 쇼 프로그래밍/매니지먼트, 악세사리 사업, 출판을 목적으로 둔 워크샵 강의에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 당장 경제자본을 끌어주는 돌봄 노동(=회사일)은 점점 사이드잡을 의식하며 받고 있다. 그래도 잡히는 스케쥴을 모두 수행하려는 편이다. 애인H는 자기와의 시간도 계산하고 일을 받는거냐며, 우리 만남에 늘어나는 일들이 영향을 주지 않을거라는 마인드는 너무 나이브하다며. 일에게 졌다는둥 농담같이 서운함을 전달했다. 앞서 걱정하는것 같단 인상을 뒤로 그의 마음을 백번 이해해. 일의 중요도와 비율을 판단하고 스케쥴링 하는데에 그와의 시간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난 그런 사람같을테니까. 그 대화 이후 H의 집에서 2주동안 동거하며 이런 걱정은 어느정도 무마되었다. 밖에서 일하는건 돌봄일이거나 마켓장사고 다른 프로젝트는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하니 집에서 나란히 앉아 일과 관계 둘을 자연스레 잘 챙길 수 있었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란 말이 뜨듯미지근하게 발바닥을 댑힌다. 일하는 싸이클을 꽉채워 돌리는게 이번주가 피크였다. 돌봄일을 하루에 12시간 하는날이 여럿있었고 하루는 6시간 일을 끝낸후 6시간 상품촬영을 했다. 그래도 같이 일을 하고 만나는 클라이언트들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지않으니 후련하게 해낼수있었다. 이런날들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다음달은 일을 줄이기로 다짐한다.
2. Pflegedienst
돌봄노동을 하다보면 스스로가 간호직종사중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돕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고 의학품이나 신경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교육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있길래 잔뜩 신청해놨다. 우울증을 다루는 법 뇌와 신경계, 근육과 움직임 등등. 내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근육��련 장애가 있어서 휠체어를 탄다. 리프터의 도움없이 침대에서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상반신까지 마비된 상태다. 골반 밑으로만이라면 팔의 힘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앉을 수, 침대에 누울 수 있다. 상반신까지 마비됬다면 그리고 팔을 쓰지 못한다면 정말 미니미니멀 한 행동부터 타인을 종일 필요로 한다. 클라이언트는 원하는 바를 구술하는데 이건 엄청나게 소모적이다. 매번 그리고 계속 말해야하는 입장이 되어본적 없으니 참 편하게 살아온거지. 그들은 시키지 않는 말투를 구사할 것, 원하는 걸 명확히 전달할 것, 왜인지 이해시킬것 등등을 신경써야 한다. 나는 코가 간지러우면 무의식적으로 긁어버리지만 그들은 감각을 인지한 순간부터 의식하고 전달하고 요구하기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이런 공감과 이입에도 불구하고 나로써는 편한 일이 좋다. 온종일 서서 보조해야하는 클라이언트가 담당팀에 들어올 의사를 물어봤는데 대답을 유보한 이유는 그를 위해 일할 때 종일 서서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밤엔 삼십분/한시간 간격으로 누운 자세를 바꿔줘야하는데 신체적으로 고단하면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 컨디션을 챙기는게 여러모로 중요하다. 일을 줄여야한다고 다시한번 적어본다.
3. 다시 봄
4월은 생일이 있는,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온지 1년이 된, H와 만난지도 1년이 된 달이다. 엄마가 통화로 인스타에 올라오는 노란머리가 누구냐고 물어봤다. 요새 만나는 사람이라도 했더니 다른 사진에 있는 그의 부인을 그의 엄마냐고 물어봤다. 난 친구라고 했다. 폴리관계를 설명한적이 있지만 엄만 아무래도 걱정할 갓같아서 그의 결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부인도 애인이 있고 우린 모두 친해져서 즐겁게 지낸다고 말한들 이런 관계양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할 것같아 함구한다. 우리 4명은 여러모로 놀러갈 궁리를 하고 프로젝트도 같이하고 날이 갈 수록 사랑이 넘쳐난다. 나랑 H가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넘어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대화는 중단된 상태다. 나는 빼박으로 카파시티가 없고 그는 지금의 행복감이 흐트러질까봐 그 안건에서 물러서있는 것 같다. 여튼 내가 지향하는 관계관을 숨길 의사는 가족에게 밖에 없다. 꽂히는 사람이 모노가미만을 할 수 있담 아무래도 시작을 못하겠지 그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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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iv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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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목표를 세웠고 과정에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게 가장 만족스럽고 하르 못해도 다음날 다시 할수 있다는게 만족스럽다. 나이먹고 벅차게 사냐는 말도 있지만 여러개의 축이 한번에 무너진 삶에서는 힘들여서 기둥을 한번에 세워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하나씩 하다보면 다시 무너져있지만 여러개를 해두면 하나가 흔들려도 다른게 잡아준다. 모양 잡히는 집을 바라보는게 기쁘다. 오늘의팩 하면서 쓰고 있다
20250319-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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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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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전 공격성과 과민성
또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월경전증후군PMS이다.[*증상이 월경 직전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월경이 시작된 뒤에도 며칠 동안 이어진다는 점에서, 월경전증후군이 아니라 월경주변기증후군이 더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 증후군은 여성이 월경기에 부정적 기분과 짜증을(또한 수분 보유로 인한 부기, 생리통, 뽀루지 등등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월경전증후군에 대해서 오래된 오해를 많이 품고 있다(월경전불쾌장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은 정상적인 기능을 못할 만큼 증상이 심한 상태를 말하며 전체 여성의 2~5%가 경험한다).
이 주제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뿌리깊은 논쟁이 있다. 월경전증후군/월경전불쾌장애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공격성과 관계가 있는가? 첫번째 질문은 대단하다. 월경전증후군/월경전불쾌장애는 생물학적 질환인가 아니면 사회적 구성물인가?
극단적인 “그건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야” 학파에게, 월경전증후군은 특정 사회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문화 특징적이다. 이 생각은 마거릿 미드가 1928년에 『사모아의 청소년』에서 사모아 여자들은 월경중 기분 혹은 행동 변화를 겪지 않는다고 단언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미드가 사모아인을 보노보를 제외하고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평화롭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영장류로 숭배한 탓에, 유행에 맞추어 일부 인류학자들은 쿨하고 옷을 적게 입는 문화라면 월경전증후군이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후대의 오세아니아 인류학자들은 미드가 사모아를 마치 에덴동산인 양 얼토당토않게 묘사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들이 볼 때 그렇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미드에게 사모아를 그런 식으로 보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사모아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백인 여성이 홀딱 속아넘어가는 모습이 하도 재미있어서 이야기를 마구 지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월경전증후군이 날뛰는 문화는(가령 미국인이라는 영장류는) 반사모아적인 것이 되었고, 그 증상들이란 여성이 겪는 부당한 취급과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 되었다. 이런 견해는 사회경제적 비판의 여지까지 제공하여, 일부 비평가들은 “월경전증후군은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된 위치에서 비롯하는 분노가 표출된 한 양식”이라고 외쳤다.
이 견해에서 파생된 또다른 생각은, 그런 억압적 사회에서도 가장 억압된 여자들이 월경전증후군을 가장 심하게 겪으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논문에 따르자면 월경전증후군이 심한 여성은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신경질적이고, 건강염려증이 있고, 성적으로 억압되고, 종교적 억압의 추종자이고, 성역할 고정관념에 더 순응하고,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물러남으로써 반응한다고 했다. 요컨대, 그런 여자들 중에는 쿨한 사모아인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다행이 이런 생각은 대부분 잠잠해졌다. 이후 수많은 연구가 생식 주기 중에 여성의 뇌와 행동이 정상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것, 월경 외에도 행동 면에서 상관관계를 보이는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예를 들어, 방추상얼굴영역은 여성이 월경중일 때보다 배란중일 때 타인의 얼굴에 더 잘 반응한다. 비슷하게, ‘정��적‘ 배쪽안쪽이마앞옆 겉질은 여성이 월경에 다가갈 때보다 배란에 다가갈 때 남자의 얼굴에 더 잘 반응한다. 그리고 배란 전 시기에 혈중 프로게스테론 대비 에스트로겐 비율이 높을수록 배쪽안쪽이마앞옆 겉질의 반응성도 더 높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배란중에는 ‘공격적’이라고 판단되는 남성들의 얼굴을 더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월경전증후군은 그런 변화가 파괴적이리만치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월경전증후군은 이처럼 실재하지만, 그 증상은 문화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중국 여성들은 서양 여성들보다 월경기에 부정적 정동을 적게 느낀다고 보고한다(그들이 실제 적게 경험하는가 그리고/또는 적게 보고할 뿐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월경전증후군에 연관된 증상이 100가지가 넘는 점을 고려할 때, 서로 다른 인구 집단에서 서로 다른 증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월경기 기분 및 행동 변화가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강력한 증거로, 다른 영장류들도 그런 현상을 겪는다. 개코원숭이와 버빗원숭이 암컷들은 월경 전에 더 높은 공격성과 더 낮은 사회성을 보인다(내가 알기로 이들에게는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가 없다). 흥미롭게도 개코원숭이 연구에서는 높아진 공격성이 지배적 암컷에게서만 나타난다고 확인되었다. 종속적 암컷들은 아마도 높아진 공격성을 그저 표현할 수가 없을 뿐일 것이다.
이런 발견들은 기분 및 행동 변화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음을 암시한다. 다만 실제로 사회적 구성물인 것은 이런 변화를 ‘증상‘ ‘증후군‘ ’장애’로 병리화하고 치료하는 행위다.
자, 그렇다면 월경전증후군의 바탕에 깔린 생물학적 기제는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월경이 다가올수록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급락하고 그 때문에 프로게스테론의 항불안 및 진정 효과가 줄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서 월경전증후군은 그 농도 감소가 너무 극심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가설을 지지하는 실제 근거는 많지 않다.
약간의 증거가 있는 또다른 가설은, 운동중에 분비되어 몽롱하고 황홀한 이른바 ’러너스 하이’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호르몬 베타엔도르핀을 지목한다. 이 모형에서 월경전증후군은 베타엔도르핀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서 생기는 일이다. 이 밖에서 가설이 아주 많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이제 월경전증후군이 공격성과 얼마나 관계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1953년에 ’월경전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의사 캐서리나 돌턴은 여성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시기가 월경기일 때가 지나치게 많다는 조사를 1960년대에 내놓았다(어쩌면 범죄를 저지르는 빈도가 높다기보다는 잡히는 빈도가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 기숙학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는 학생들이 월경기일 때 행동 불량으로 ’벌점‘을 받는 빈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감옥 연구는 폭력적 범죄와 비폭력적 범죄를 구별하지 않았고, 학교 연구는 공격적 행동과 지각 같은 비공격적 위반을 구별하지 않았다. 종합하자면, 여성이 월경기에 공격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거나 폭력적인 여성이 월경기에 폭력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149~152쪽)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만성 스트레스 반응의 기본적 차이
중학교 3학년 때 배웠지만 오래전에 잊은 내용을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항상성‘이라는 용어를 기억하는가? 항상성이란 몸이 이상적인 체온, 심박, 혈당, 기타 등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되었든 이 항상적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스트레스 요인’이다. 가령 얼룩말이라면 사자에게 쫓기는 상황이, 배고픈 사자라면 얼룩말을 쫓는 상황이 스트레스 요인이다. 스트레스 반응이란 이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항상성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설계되어 얼룩말이나 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각종 신경적 · 내분비적 변화들을 말한다.[*진정한 애호가들을 위한 정보. 근년 들어 ‘항상성(호메오스타시스)‘은 더 새롭고 우아한 개념인 ‘신항상성(알로스타시스)’으로 확장, 세련화되었다. 기본적으로 신항상성이란 인체의 이상적인 항상적 설정값이 환경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포함한 개념이다.]
스트레스 반응을 개시하는 것은 뇌의 중요한 사건들이다. (경고: 다음 두 단락은 전문적이고 필수적이지 않다.) 사자를 본 얼룩말의 몸에서 편도체가 활성화한다. 편도체 뉴런들은 뇌줄기 뉴런들을 자극하고, 그러면 뇌줄기는 부교감신경계를 억제하는 한편 교감신경계를 동원하여 온몸으로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배출한다.
편도체는 스트레스 반응의 또다른 주된 갈래도 중개한다. 시상하부의 뇌실곁핵을 확성화하는 것이다. 뇌실곁핵은 시상하��� 바닥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곳에서 부신겉질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면, 이 호르몬이 뇌하수체에서 부신겉질자극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이 호르몬이 다시 부신에서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분비시킨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더하기 교감신경계. 이것이 있으면 생물체는 고전적인 ‘싸움 혹은 도주‘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물리적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얼룩말도 사자도 이때 근육에 에너지가 필요한데, 스트레스 반응은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재빨리 혈류로 동원한다. 게다가 심박과 혈압이 높아져, 운동하는 근육에 혈류의 에너지를 더 빨리 전달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중에는 성장, 조직 재생, 생식과 같은 장기적 건설 프로젝트가 위기 이후로 미뤄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사자에게 쫓기는 중이라면 가령 자궁벽을 두껍게 만드는 일보다 에너지를 써야 할 곳이 더 많을 것이다. 또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면역계가 자극되고, 혈액 응고가 향상되는데, 모두 아픈 부상을 겪은 뒤에 유용한 현상들이다. 게다가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뇌에 도달하여 재빨리 인지와 감각의 몇몇 측면을 더 예리하게 만든다.
이것은 얼룩말이나 사자에게는 훌륭한 적응적 현상이다. 에피네프린이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없이 단거리 질주를 했다가는 금세 죽고 말 테니까. 중요성을 반영하듯, 이 기본적 스트레스 반응은 원시적인 생리 현상이라 포유류, 조류, 어류, 파충류에게서 두루 발견된다.
원시적이지 않은 측면은, 똑똑하고 사회적으로 세련되었고 최근에 진화한 영장류들에게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영장류에게 스트레스 요인은 단순히 항상성에 대한 물리적 도전만이 아니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심지어 우리가 항상성이 깨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런 예기적 스트레스 반응은 정말로 물리적 도전이 뒤따를 때는 적응적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곧 균형을 잃을 것 같다고 끊임없이 그러나 부정확하게 믿으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아 초조하고, 신경질적이고, 편집증적이고, 적대적인 영장류가 된다. 그런데 스트레스 반응은 이런 포유류의 최신 혁신을 다루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냅다 달리는 동안 에너지를 총동원하는 것은 개체를 살리는 일이다. 반면, 당신이 30년 주택담보대출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만성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성인기 당뇨를 비롯하여 다양한 대사 질환 위험에 노출된다. 혈압도 마찬가지다. 대초원을 질주하는 동안 혈압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반면 만성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혈압이 높아진다면, 스트레스성 고혈압에 걸린다. 만성적으로 성장과 조직 재생이 훼손되면, 대가가 따른다. 생식적 생리 현상이 만성적으로 억제되어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배란주기가 망가지고, 남성은 발기 부전과 테스토스테론 감소를 겪는다. 마지막으로,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면역력을 향상시키지만, 만성 스트레스는 면역을 억제하여 일부 전염성 질환에 취약하게 만든다.[*애초가를 위한 추가 정보. 만성 스트레스를 겪을 때 면역 및 염증 반응이 억제되는 것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짓이다. 의사가 과민한 면역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가령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의) 면역계를 억제할 때, 이식된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예방할 때, 과민성 염증 반응을 억제할 때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코르티손이나 프레드니손과 같은 ’스테로이드성‘ 면역억제제/항염증제가 바로 이렇게 작용한다.]
뚜렷한 이분법이다. 만약 우리가 정상적인 포유류처럼 급성 물리적 위기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만성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활성화한다면, 건강을 해친다. 필요할 때 스트레스 반응을 활성화하지 못해서 아픈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우리는 스트레스 반응을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순전히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활성화하다가 아프다. 중요한 점은, 질주하는 얼룩말과 사자에게 유익하게 작용하는 스트레스 반응은 몇 초에서 몇 분 사이에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보듯이 시간 단위로 받는 스트레스는(그래서 ’지속적’ 스트레스다) 악영향을 낳는다. 행동에 대한 달갑잖은 영향들도 물론 포함된다.
(153~156쪽)
지속적 스트레스를 겪을 때 편도체는 정서적 감각 정보를 더 빠르고 덜 정확하게 처리하고, 해마 기능을 지배하고, 이마엽 겉질 기능을 망가뜨린다. 우리는 좀더 무서워하게 되고, 생각이 엉클어지고,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이지 않고 습관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누가 봐도 빠르고 반응적인 공격성으로 이어질 상황이 아닌가. 스트레스와 글루코코르티코이드 급성 투여는 설치류에서도 인간에서도 그런 공격성을 높인다. 여기서 이제 우리가 익숙한 두 가지 단서가 따른다. ⓐ스트레스와 글루코코르디코이드는 공격성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공격성을 부르는 사회적 촉발 요인에 대한 민감성을 높일 뿐이다. ⓑ이 현상은 이미 공격적 성향이 있는 개체들에게서 더 쉽게 발생한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더 오래 이어지는 스트레스는 이 보다 더 뚜렷하게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공격성을 키우는 이유로 우울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공격성이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점이다. 쥐에게 쇼크를 주면,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농도와 혈압이 높아진다. 쇼크를 많이 주면, 쥐는 ‘스트레스성‘ 궤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이처럼 쇼크를 겪는 쥐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활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쳇바퀴를 돌린다거나, 먹는다거나, 욕구불만으로 나무를 씹는다거나 그중에서도 특히 효과적인 것은 다른 쥐를 무는 것이다. 스트레스성(즉 욕구불만성) 전위 공격성은 다양한 종들에서 두루 나타난다. 개코원숭이는 공격성의 절반 가까이가 이런 공격성일 정도다. 지위가 높은 개코원숭이가 싸움에서 지면, 녀석은 준성체 수컷을 쫓는다. 준성체 수컷은 당장 암컷을 물고, 암컷은 당장 새끼에게 달려든다. 수컷들의 지위가 같을 때 그중 싸움에서 진 후 전위 공격성을 보이는 성향이 높은 개체일수록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농도가 낮다는 것은 내가 연구에서 보여준 사실이다.
인간은 스트레스성 전위 공격을 끝내주게 잘한다. 경제 침체기에 배우자 및 아동 학대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아니면, 가정폭력과 프로축구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를 떠올려보자. 만약 그 지역 팀이 예상과 달라 지면, 그 직후 남자들이 저지르는 배우자/파트너에 대한 폭력이 10% 는다(팀이 이기거나 예상대로 진 경우에는 늘지 않는다). 걸린 것이 많은 상황일수록 패턴이 격화한다.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했을 때는 가정폭력이 13% 늘었고, 심지어 그 상대가 경쟁 팀이었을 때는 20% 늘었다.
이처럼 전위 공격성이 스트레스 반응을 둔화시키는 현상에 어떤 신경생물학적 바탕이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추측해보자면, 화풀이가 도파민 보상 경로를 활성화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도파민은 부신겉질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확실한 방법이다.[*바탕에 깔린 신경생물학적 기제는 아마도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리석은 의사결정을 하는 다른 상황들, 가령 폭식을 하거나 술을 더 많이 마시거나 하는 현상들의 기제와 비슷할 것이다.] 애먼 사람에게 화내는 것이 실제로 자신의 화를 푸는 데 도움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나쁜 소식이 더 있다. 스트레스는 사람들을 더 이기적이게 만든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이나 중립적 상황을 겪은 직후에 모종의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가상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에 답했다.[‘트리어 사회 스트레스 시험‘이라고 불리는 이 시험은 이 분야의 표준 기법이다. 피험자는 15분간 가짜 취직 면접을 보고 암산 작업을 하는데, 둘 다 무표정한 얼굴의 평가자들 앞에서 해야 한다.] 어떤 시나리오는 정서 수위가 낮았지만(“당신이 슈퍼마켓 육류 코너 앞에서 기다리는데, 웬 나이든 남자가 당신을 밀쳤습니다. 당신은 항의하겠습니까?“), 어떤 시나리오는 정서 수위가 높았다(”당신이 평생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도 있는 몸입니다. 당신은 가족을 떠나겠습니까?“). 스트레스를 겪은 피험자들은 강렬한 감정이 따르는 도덕적 결정을 해야 할 때 더 이기적인 대답을 내놓았다(감정이 온건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농도가 더 많이 높아질수록 더 이기적인 대답이 나왔다. 같은 가상의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피험자들이 개인적인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타성을 발휘하겠노라고 대답하는 정도를 낮추었다(하지만 자신과 무관한 결정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도 내분비적 효과의 수반성이 드러난 셈이다. 스트레스는 사람들을 더 이기적으로 만들지만, 감정적으로 몹시 강렬하고, 개인적인 상황일 때만 그렇다. 이것은 이마엽 겉질 기능이 손상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2장에서 설명했듯이, 이마엽 겉질이 손상된 사람들도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판단할 줄 알지만, 문제가 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것이라면 판단력이 더 많이 훼손된다.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힘으로써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이나 남보다 자신의 요구를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감정이입과 거리가 멀다. 스트레스가 감정이입을 줄이는 것일까? 생쥐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그런 듯하다. 맥길대학교의 제프리 모길이 2006년 『사이언스』에 낸 놀라운 논문은 생쥐의 감정이입을 살펴보았는데, 옆에 고통을 겪는 다른 생쥐가 있는 경우에 실험 대상 생쥐의 통증 문턱값이 낮아지는 감정이입 현상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 현상은 그 다른 생쥐가 실험 대상 생쥐와 같은 우리에 있던 개체일 때만 그랬다.
이 사실이 흥미로웠기에, 나는 모길의 연구지노가 함께 같은 설정으로 후속 실험을 해보았다. 원래 생쥐는 낯선 생쥐가 곁에 있으면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우리가 생쥐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분비를 일시적으로 막으면, 생쥐는 낯선 개체에 대해서도 같은 우리에 있던 개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통증 감정이입’을 보였다. 의인화하여 설명하자면, 글로코코르티코이드는 생쥐가 감정이입을 하는 ‘우리 편‘의 범위를 좁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통증 감정이입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분비가 차단되지 않는 한(효과가 짧게 지속되는 약물을 투여받거나, 피험자와 낯선 사람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면 분비가 차단된다) 낯선 사람에게 발휘되지 않는다. 2장에서 보았듯, 통증 감정이입에는 앞띠이랑 겉질이 개입한다. 내 생각에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앞띠이랑 겉질의 뉴런들을 무력화하거나 위축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요컨대, 지속적 스트레스는 우리의 행동에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훌륭한 최선의 행동을 끌어내는 상황도 있다. 캘리포���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셸리 테일러는 유명한 ‘싸움 혹은 도주’ 반응이 주로 남성들에게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기존의 스트레스 연구는 남성들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사실 여성은 상황이 좀 다르다. 테일러는 입에 딱 붙는 표현을 지어내는 데 있어서도 자신이 하고많은 남자들 못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어, 여성의 스트레스 반응은 새끼를 보살피고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보살핌과 어울림’으로 더 많이 기우는 편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스트레스 관리 스타일에서 드라는 충격적인 성차를 잘 묘사한 이론이다. 그리고 ’보살핌과 어울림’은 여성의 스트레스 반응에 관련된 여러 요소들 중 옥시토신 분비가 남성의 경우의 경우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지만, 현실은 ‘남성=싸움/도주, 여성=보살핌/어울림’ 구도보다는 더 미묘하다. 양쪽 모두 반례가 많다. 가령 스트레스는 쌍 결합을 하는 마모셋원숭이 수컷뿐만 아니라 다른 수컷들에게서도 친사회성을 이끌어내고 앞서 보았듯 여성들도 공격적인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61~164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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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nproject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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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
딱히 종교가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흔히들 요즘에는 성지순례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미래를 예측한 글을 다시보러 가거나 그곳에서 또다른 소망을 적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보며 미래도, 과거도 전부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조금은 믿는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자취를 따라 걷는 신의를 믿곤 한다.
어떤 해석이 있더라도 개인이 원하는 구출점에 다다르기 위한 끈을 제각각 잡은 것이겠지.
신의 손길을 혹은 숨결을 또는 자취를 쫓는 사람들의 순례길은 사실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 된다고 한다.
뜻과 해석이 담긴다면 그곳이 곧 성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신도 자신도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성지로 구분된 장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
-Ram
*성지
1. 어느 초여름, 막 더워지기 시작할 시기에 해동용궁사를 갔었다. 내가 가봤던 절 중 가장 예뻤던 건 불국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새파란 하늘 아래 절벽엔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절이 있다니. 아무 기대 없이 그냥 잠깐 들렀다 나오려고 했었는데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곳에서 한참을 있었다.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조금 많았었는데 평일 새벽쯤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간에 오면 더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곳에 사는 스님들은 이런 뷰를 매일 보면서 살겠지', '불교 신자도 아닌 나도 매일 오고 싶은데, 불교 신자분들은 이 절에 오는 발걸음이 굉장히 가볍겠지' 등 별 생각을 다 하며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오늘같이 하늘이 파란 날, 한 번 더 해동용궁사를 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네. 부산에 가볼까.
2. 방콕에 여러 번 갔었고, 오래 머무르기도 했었지만 방콕 왕궁 안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딱히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가 다른 곳일 뿐이었는데.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 방콕 왕궁 안에 들어가 보자는 친구들이 있었다. '계획에 방콕 왕궁이 있었나. 내가 짠 계획엔 없었는데. 그럴 거면 계획을 좀 들여다보고 그 안에 왕궁을 넣지. 그러면 나도 그 시간에 할 것을 생각했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긴바지를 준비하지 않은 나는 그냥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관광하고 싶은 그들을 왕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뙤약볕 아래에서 여러 관광객들이 지나는 길목에 그냥 멍하니 서있었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첫날부터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웠기 때문이겠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스스로가 지쳤나. 또는 아직 그게 풀리지 않았나.' 별별 생각이 들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무작정 걸어서 그랩이 잘 잡히는 곳으로 간 다음 그랩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랩 안에서도 현타가 왔다. 내가 뭐하고 있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군가가 잘못하긴 한 걸까? 또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감히 특정인을 탓할 수도 없는, 이러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더욱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웠다. 뭐라도 먹는다면 나아질까싶어 다음에 가려던 목적지 근처에 내려 무작정 처음 눈에 들어온 일본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Hee
*성지
Tour du Mont Blanc. 알프스 몽블랑 산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둘레길을 일주하는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동남부 샤모니에서부터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샤모니까지 약 170km의 거리, 약 10,000m의 획득 고도. 영혼의 일부를 산에 의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몽블랑은 내게 일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첨봉들. 빙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몽블랑 대산군의 실루엣. 몇 해 전 코로나로 한 번 무산됐던 성지순례를 이제서야 다시 도전하려 한다.
10일간의 일정 동안 매일 얼마나 걷고 식료품을 어떻게 보급할지, 어디서 텐트를 펼치고 자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만 험난할 여정을 모두 마치고 감격스러운 순례자의 표식을 마음속에 품은 뒤에 산을 대하는 나의 신앙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향한 믿음이 위태롭고 변화막측한 세상 속에 놓인 나를 구원하기를.
-Ho
*성지
등산인들이나 불자들에게 성지라고 불리는 설악산 봉정암을 엄마가 간다길래 호기롭게 남편과 나도 등록했다.
지금 하산하고 집에가는 중인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 설악산은 정말 지독히도 자기를 내어주지 않았고, 나는 무력했지만 한 걸음,한 걸음 내 발로 갈수 밖에 없었다. 유일한 긍정적인 사실은 이게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다리를 옮기다보면 무념해지기도 하고 몇 가지 깨달음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절대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몸도 마음도 긴장했고, 내 자신을 지킬수 있는건 내자신뿐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남편이 산을 너무 잘 타서 산악회 아저씨들 한테 맥주도 얻어먹고 재밌게 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옳았을 때도 있지만, 열에 일곱정도는 그냥 일단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한 결정이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 준 적도 많다. 이번에 봉정암 산행이 그랬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해야 할 결정들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내 직감에 따라야겠다. 그 결정들이 분명히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성지가 될 것 이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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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2alpaca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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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세상의 지식을 손에 잡히는 물질로 느낄 수 있어서 그런가, 끝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좋은 걸까, 속도 빵빵한 무료 와이파이가 좋은 걸까. ㅎ 리치몬드 도서관은 북미에서 가본 도서관 중 내가 한국에서 살 적의 도서관과 가장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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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슨몰에 갔다왔다. 아웃렛몰은 어디나 다들 비슷하다. 여긴 우리동네 크로스아이언이랑 판박이. 늘어선 상점 순서마저 같다. 예를 들면 삭스 옆에 토미 이런식으로. 좁은 리치몬드에 있다가 길부터 널찍널찍한 이 동네 오니 우리 동네랑 비슷한 것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살던 곳이랑 익숙한 환경에 놓이면 마음이 안정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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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 센터 구석에 있던 주스가게인데 자릴 뺐나보다. 사장님 혼자서 아침부터 밤까지 진짜 열심히 일하시는 듯 보였는데. 나도 딱 한번 사먹어봤을 뿐 단골이나 그런 건 아니였다. 나중엔 탕후루도 팔고 노력하신듯 했는데 잘 안됐나보다. 집기가 빠진 이 텅빈 가게 볼때마다 열심히 과일 손질하시던 사장님 생각이 한동안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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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오니 팹시가 요로코롬 앉아있다. 너무 애기애기해서 우리 둘만 있을 땐 얘를 애기야- 라고 부른다. 사람 엄청 좋아해서 내 바지자락에 엄청 부벼대고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혼자서 뒤집고 귀염귀염 행동들 하는데 내 고양이가 아니다보니 뭘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다. 나도 그간 안부 물으며 열심히 내 언어로 쫑알쫑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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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yanono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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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무렵이 되었는데,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려는 게 느껴지는데도 예전만큼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올 겨울의 무지막지한 추위와 폭설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신발이 다 젖을까, 미끄러져 넘어질까 종종걸음을 걷는 날들이 지겨워서, 되려 어서 따뜻한 날씨에 눈이 다 녹아서 바깥을 마구 뛰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번 생일 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생일전증후군(?)을 겪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 전에 나는 '왜 생일 무렵만 되면 가라앉는가'에 대해 썼던 적이 있었다. 늘 그렇듯 의식의 흐름 대로 타자를 치다 보니 스스로 확인한 그 이유는, 나이를 먹는 데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봄에 앓는다고 하는 경도의 계절성 우울증으로 추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말인 즉슨, 며칠 뒤 서른세살이 되는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나이듦이 두렵지 않고, 봄의 따뜻함과 생동감에 대비되어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나? 그런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제 괜찮다. 많은 것들이 괜찮아졌다. 크고 작은 것들이 많이도 변한 나지만, 생일을 맞아 특히 축하해주고 싶은 변화가 있다. 예전보다 훨씬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두터워졌고 나라는 존재를 수용하고 인정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많이 슬프고 자주 불안하지만, 슬픔과 불안을 다루고 다스리는 법을 조금씩은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나를 알고 나와 친해지는구나 생각하면 생일은 축하할 일이 맞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겨붙어 침전 중인 마음 상태가 아니라면 봄 날씨는 즐거운 게 맞다.
어제랑 오늘 쉬는 날이었는데 아무 일정이 없어서 혼자서 생일을 기념할 만한 무언가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가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어서, 나를 기분 좋게 해줄 거라 생각되는 곳들에 돈을 보냈다. 한 군데는 작년 이맘때 구조한 아기 고양이를 입양해준 곳, 또 하나는 학생 시절에 가끔씩 가다가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발을 끊은 보호소. 학생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보니 보호소의 위치가 아주 멀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지금 사는 곳과는 고작 차로 25분 거리였다. 세상에. 그래서 기부할 만한 물건들을 싸들고 바로 가봤다. 아쉽게도 오늘은 봉사를 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이리 가깝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부턴 미리 연락하고 오겠다 인사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돈을 썼는데 손에 잡히는 물건도 기억도 없어서인가 생각보다 기분이 썩 좋아지진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 즐거워하는 나의 성향을 이제 잘 아니까 새롭게 해본 건데... 아직도 나는 나와 더 많이 친해져야 할 것 같다.
굉장한 감기에 걸렸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만큼 목구멍이 아팠는데 죽도록 아픈 기간이 코로나 때보다 세네배 길었다. 코로나는 격리를 할 수 있어서 집에서 쉬기라도 했지 이번엔 약을 먹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했어서 매우 힘들었다. 처음 지어온 약이 안 들어서 증상이 계속 심해지다가 다시 병원에 가서 강한 소염제와 진통제를 처방 받았고 그날 밤부터 통증이 씻은 듯이 내려가는데...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그 여운이 남아있다. 감기에 잘 안 걸리는 체질이라서 감기가 걸린 자체가 나에겐 특수한 일인데, 이렇게 다시 태어난 기분까지 선물하다니 고놈 참... 이번 유행병은 주변인이 모조리 걸리는 것부터 그들의 증상 정도도 심상찮더라니... 나에게도 정말 굉장하고 굉장한 놈이었다. 앞으로 지구 상의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굉장해지겠지. 두렵다.
새해 다���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매일 저녁 노노랑 사냥놀이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작년 연말부터 감기와 과로로 많이 아팠던 날 하루만 빼고 우리 고양이와의 루틴을 꼭 지켜왔다. 튼튼한 고양이 만들어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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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yup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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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막 나가서 제정신 차리고 있는게 쉽지 않다. 그 와중에 그나마 제일 건질게 많을 것 같은 냥반이 가장 미래가 없는 선택을 하는 걸 보고 도대체 또 무엇을 주고 받았길래가 궁금해졌다.
자유시장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사실 합종연횡이다. 모든 걸 일사분란하게 누구 머릿수가 많은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널려있는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정치집단에서도 연합과 결렬이 계속해서 유동적으로 반복되게 하는 것. 하지만 유독 정치영역에서만큼은 이 당연하고도 필요한 능력이 나날이 퇴화되고 있을 뿐이구나. 싶어서 안타깝다.
그 와중에 대화의 목적이 나는 차이의 확인에 있는데, 아주 많은 다른 사람들은 유대감의 형성이 있다라는 점도 그런 능력을 퇴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차이가 있음에도 우리는 결국 운명공동체라는 것과 동조하지 못한다면 너는 적이고 악이다라는 것. 후자의 스탠스가 전자를 압도해버린 결과가 지금의 사태가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2 방송 화면에 잡히는 사람들만봐도 뻔히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구지 젊은 여성들만 인터뷰를 따는 방송사의 행태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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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l-ja-a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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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계절감」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을 흘리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을 흘리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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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just-said-that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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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Night in Paradise, 2021) - dir. 박훈정(Park Hoon Jung)
ⓒNetflix
/ a.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결말이지만.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나 보다.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는 영화.
b. 왜 ‘낙원의 밤’일까? 역설법? 반어법?
c. 박훈정 감독님의 세계관이 있다.
1) 양아치의 세상에선 믿을 놈이 없다.
2) 인생은 독고 다이.
d. 늘 총소리를 검은색 화면 위에 채워 넣는 게 상징.
e. 전 박훈정 감독님 작품 좋아합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죽이고 싸��고 칼로 찌르고(당연히 내가 당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님) 어떻게 끝날지 감이 안 잡히는 스릴러 작품. 기가 막히게 내 취향을 저격당하는.
f. 작년 여름에 본 ‘귀공자’, 또 한 해 전에 본 ‘마녀 2’, 또 더 오래 전에 본 ‘마녀 1’ 등을 오랜만에 다운 받은 거 다시 보니까 박 감독님 작품을 다시 한번 보고 싶더라. 안 그래도 가입한지 얼마 안 된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길래.
g. 박 감독님은 일단 한 번 꽂힌 배우들은 재탕을 많이 하심. 캐스팅이 귀찮으신 건지, 그 배우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건지, 여러 번 출연시키시더라. 이번에 나올 ‘폭군’ 시리즈도 보려고 합니다.
h. 엄태구 배우님이나 전여빈 배우님, 차승원 배우님 모두 박 감독님 스타일이라서 웃겼다. 취향 너무 확고한 거 아닙니까? 서사 있는 캐릭터에 맞춤형인 배우들을 찰떡같이 캐스팅. 그리고 무채색의 배경도 오랜만이고.
I. 어떻게 같은 장르에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지 신기할 따름.
j. 아무리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영화 세계라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기가 원하는 작품 만드는 걸 꾸준히 밀고 나가는 타입의 감독들이 있다고 믿는다. 자본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둘째 치고 만들고 싶은 건 만들고 보는겨. 그게 박훈정 감독님 스타일. 그리고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넷플릭스에 데이빗 핀처가 만든 작품들 꽤 많이 올라와 있던데 차근차근 봐야겠다. 왜 영화관에서 개봉을 안 하고 죄다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거예요... 영화관에서 두세 번씩 볼 열정이 나는 있다고.
k. 박훈정 감독님의 스타일은 또, 시리즈를 만드는 것에 강하다는 거.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거겠지? 난 내가 쓴 소설 작품을 시리즈로 낼 생각을 못하겠다. 별다른 계획 없으면 시리즈를 안 내지 않을까 싶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도 속편을 내달라고 꾸준히 독자들이 요청했지만 작가인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가장 최선의 결말이다’고 한 것처럼. 그런데 박훈정 감독님은 세계관이 워낙 탄탄해서 막 몇 년 전 것도 생각해놓고 계시고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시고. 같은 창작자로서 부럽다. 나도 한 장르만 꾸준히 파보고 싶기도 해.
l. 스릴러, 혹은 추리 소설 시놉시스를 꽤 여러 개를 생각해놨다. 진짜 이게 세상 밖으로 나오면 기가 막힐 것 같은데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는지. 하지만 역시 반전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나는 제일 재밌다. 어떻게 끝날지 예상이 안 되는 거. 쓰면서도 스스로 ‘크하, 김수현! 역시. 넌 천재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러고. 난 작가가 왜 꼭 겸손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전 안 겸손한데요? 전 제가 글을 너무나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는데요? 근데 대부분의 소설가는, 소설가라면 겸손한 게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게 잘 납득이 안 간다. 자기 글을 자기가 잘 썼다고 생각하면 왜 안 돼요? 난 한 번도 겸손해본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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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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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리드와 마우스피스"
클라리넷, 바순, 오보 같은 목관 악기는 나무를 얇게 깎아 만든 리드(reed)를 떨리게 해 소리를 낸다. 클라리넷, 색소폰은 리드를 마우스피스에 대고 리가춰(Ligature)라는 거로 고정한 후 연주한다.
클라리넷 입문 땐 소리내기 편한 2호반을 쓰다 어느 정도 짬밥이 쌓이면 3호로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나 역시 그동안 주로 2호반 또는 3호를 쓰다 올 초에 시험 삼아 3호반으로 바꿈. 두꺼운 걸 쓰면 소리가 깊어지고 삑사리(=squeak)가 덜 나는 대신, 불기 어려운 만큼 어깨와 주둥이가 경직되기 쉽다.
역으로 두꺼운 리드로도 편안하게 불 수 있다면 그만큼 몸이 예전보다 이완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 것.
처음엔 바람 새는 소리가 심하게 나서 힘들었다. 3호와 교대로 불면서 몇 달 간 개겼더니 적응이 되긴 했으나 오래 불긴 어려웠다. 매주 일요일마다 윈드 오케스트라 연습을 50분씩 2교시로 나눠서 하는데, 후반부 연습 때 롱톤(=한 음을 길게 부는 것)이 이어지는 음악을 3호반 끼고 했더니 주둥이가 풀려버리더만.
어느 날은 (클라리넷 전공하신) 지휘자가 리드 뭐 쓰냐고 묻길래 "3호반"이라고 하고, 마우스피스는 뭐냐고 또 물어 "반도린 B45"라고 했더니 B45에 3호반은 무리라는 말씀을 하심.
요점은 마우스피스와 궁합이 맞는 리드 두께가 있다는 거. 다시 말해 B45 + 3호반은 구조상 입을 꽉 물어야 하기 때문에 오래 불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 반면 요즘 인기 많은 '반도린 블랙다이아몬드' 시리즈 경우엔 3호반을 써도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전문 연주자라면 자신에게 딱 맞는 마우스피스를 찾아 온갖 것을 다 써봐야겠지만, 나야 뭐… 그냥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쓰면 되는 거.
하지만 3호반을 썼을 때 확실히 주둥이에 무리가 더 빨리 온 거는 납득했기 땜에 개인 연습할 땐 3호반, 합주할 땐 3호를 쓰는 거로 방식을 바꿈. 웨이트트레이닝할 때 과부하를 주면서 운동해야 하듯 연습을 3호반으로 한 뒤 3호를 쓰��� 날아갈 듯 편하긴 하니까.
몇 주 전 악기 부품 쌓아 놓은 상자를 뒤지다 보니 4호 리드가 있었다. 십수 년 전 악기 들고 클라리넷 기초반 단체 수업 찾아갔을 당시 선생이 나중에 함 도전해 보라고 준 기억이 났다. 그때는 "4호"라는 것만으로 약간 주눅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리 어렵잖게 소릴 낼 수 있게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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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thaeri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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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Cleaning Exerc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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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계절이 없다. 하루에 사계절이 오는 것은 기본이고 지난주 코트를 입다가 이번주에는 반팔만 입어도 숨통이 막히는 더위가 오니까. 한국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명확해서 한 계절 후에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전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겨울 지나고 한 번 하는 옷장 대청소를 속시원히 해야지만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 것같아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겨울 옷을 드디어 오늘 빨래하며 여름을 맞이하는 주말을 보냈다. 
옷장을 정리하지 않고 새 옷을 사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서 오늘 한꺼번에 빈티드에 10개가 넘는 옷을 올렸다. 다 팔리진 않아도 되니까 일단 올린데에 의미를 두자. 뭐든 한번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이후에는 쉬워지자나!
시작이 오버웰밍해서 미루는 일들이 항상 있는 것 같다. mid-year review도 이번에는 승진 대상자라 엄청 잘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자이언트 베이비 스텝으로 1/6을 작성했다.. 5개 남았지만 나머지는 조금 더 빨리써지겠지. 잘 써야하고 잘 쓰는 것에 따라 승진이 달려있다는 생각이 더 부담을 줘서 잘 안써지는 것 같다. 그래도 주말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니 이거라도 잘했다고 칭찬해줘야지. 그런 의미에서 텀블러 잠깐와서 이 일기 마치고 다시가서 써야지...
겨울에 비해 여름이 오니 일상과 주말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겨울에는 주말 내내, 토요일 일요일 둘다 집에서 빨래하고 쉬는 날이 많았는데, 날씨가 좋아지니 친구들이 피크닉도 호스팅하고, 여러모로 나가 노는 계획이 많이 잡히는 것 같다. 갑자기 바뀐 주말의 모습에 문득 ‘어어 다시 조용한 날들로 돌아가야 하는거 아니야' 싶었지만, 겨울에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 여름에 즐긴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active energy가 많이 생겼을 때 써야겠다하고 생각하고 있다. 
문득 나는 불안감에 쉽게 휩싸이는 이유가 어떤 패턴, 지속성, 루틴이 깨지는 걸 두려워해서 인것 같다. 반복적인 인생은 큰 틀에서 싫다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는 어느정도의 연속성과 지속성이 나를 편안하게 하나보다. 주말엔 빨래해야 하고, 요가도 가야 하고. 헬스장 며칠 안가면 불안하고. 내 몸 속에 어떤 주기를 일정하게 두는 것처럼.
그런 맥락에서 최근에 한 대화가 나한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같은 요가 스튜디오에 오는 코코라는 친구와 끝나고 차 한잔 마시며 각자의 요가 삶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내가 요가를 꾸준히 해야하고 계속 발전해나가야 하는 것에 집착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요가를 오는 것 보다 그냥 요가를 요가로서 즐기는 건 어떨까하고 코코가 이야기해주었다. 요가를 해야지 토요일과 그 주말이 좀 더 뿌듯하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내 몸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아침 아쉬탕가를 안갔다. 잠을 많이 자고 싶어서, 가야한다는 머리의 소리를 약간 꺼두고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또 언젠가 가고 싶은 날이 오겠지! 아마도 곧!
크리스와 대화를 하면서 좀 더 intuitive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헬스 루틴을 짜고 공유하는 앱을 이야기하면서 이걸 통해 내가 꾸준히 향상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자 왜 향상해야 하냐고 물었다. 10키로 하다가 15키로 하는 나를 발견하면 뿌듯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매일 10키로 하고 기분 좋으면 안돼?’라고 묻는 질문에 문득 내가 너무 발전과 루틴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가든 테니스든 헬스든 나를 액티브하게 해준다는 데에 감사하고 한순간에 athlete가 되려는 콤페티티브 한 내 자신을 잠시 조금 조용히 시켜야겠다.
여튼 날씨가 좋아지니 액티브한 에너지가 생겨서 좋고, 그 에너지를 계속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하고 싶은 게 한꺼번에 엄청 많이 생기다가도 금방 열정이 타버리곤 하는데, 그걸 할 수 있게끔 함께 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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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만들고 되는 것에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크리스가 말한대로 지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지. good intention & positive vibes와 함께 더 좋은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 있는 여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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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nproject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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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이유
꼭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날의 그 분위기가 재밌었고, 약간 덥고 습했던 공기가 살짝 가시는 계절이라 선선한 바람이 스칠때마다 기분이 몽글거리곤 했었다.
아주 조금 오른 취기에 오랜만에 만나서 꺼내는 추억같은 것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하면서 찾아봐도,
너를 만나게 된 꼭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하고픈 말이 많아서 눈동자를 굴리고, 횡설수설하던 네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웃겨보여서라고 하면 황당하겠지.
널 좋아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그냥, 그 때의 너가 퍽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였던것 같다.
열심히 내게 쑥쓰러움을 덕지덕지 묻히고 내 기분을 살피던 네가.
그랬거든.
-Ram
*이유
1.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그게 불합리하더라도) 어떤 이유들을 다 붙여서 합리화시키기 때문에 아무리 타인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이야기해도 씨알도 안 먹혔다. 대신 내 결정으로 인해 내가 불행한 상황들을 맞닥뜨린다면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문제고, 어떻게든 풀어 나가겠지. 중요한 가치들을 맞바꿨다면, 내가 선택한 가치들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아무렴 나도 사람이라 조금씩 흔들리는 순간들이 온다. 그땐 내가 왜 이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뒤돌아보지 않는 나라도.
2. 왜 좋았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새침한게 좋았고, 군말이 없어서 좋았고, 능청맞지 않아서 좋았고, 여지를 두지 않아서 더 좋았고, 부담을 주지 않아서 더 좋았고, 나에게 있어선 거의 결정하지 않았을 만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더 좋았고, 이미 지난 과거에 집착하지 않아서 더 좋았고, 잘 걸어서 좋았지.
-Hee
*이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도 전에 순천 시골에서 사셨을 때 친하게 지냈던 이성 친구를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낚시가 취미라던 그 아저씨. 여전히 순천에 살고 계시면서도 한 달이 넘게 매 주말마다 부산 집으로 엄마를 찾아오셨었다. 직접 잡은 생선을 깔끔하게 손질해서 담은 아이스박스를 들고서 말이다. 반가움이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을 즈음에 발길을 끊으셨지만 그 후로도 종종 전라도에서 많이 잡히는 박대, 삼치 같은 생선을 집으로 보내주시며 안부를 전해주셨었다.
연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왠지 그 아저씨가 떠올랐다. 부산 가면 종종 걔를 만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못할 것 같아서일까. 어쩌면 정말 가끔 하던 안부 연락도 하지 않게 될 것 같아서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잠시 스치곤 지나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행복하다니 앞으로도 행복할 일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Ho
*이유
Why do we live our lives, what is the reason? Do we live our lives for others or ourselves? We find the reason within ourselves. Someone can’t give you happiness but it is something you can find within yourself first before you let others into your life. Once you learn that reason then you can find that special someone who you can share that happiness with.
Once we share happiness in our lives together then our future will be bright, the reason for life will be clear and our stars will align as the sunset goes down in the nights sky. Always together and never apart.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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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thehipposw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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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 이훤
노래를 드리며 나의 이름을 지웁니다 그 위에 깨끗한 이름을 새깁니다 새기고 새겨도 매번 희미해지는 갈보리에 뿌려진 빛의 살점과 눈물을 맘 끝으로 만집니다 흥건히 잡히는 평온은 또 한 번 나로 하여금 내 이름을 지울 수 있게 해줍니다 하늘의 빛을 하늘에 돌리는 당연한 일 눈물 나는 그 제사를 누군가는 예배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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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332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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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재벌과 결혼해야겠다
2년반동안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생기부 관리와 성적이 끝났다 정말 힘들기도하고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하지만 3학년 마지막 성적이 안좋은 결과가 나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사회는 성적순이다 시험때문에 운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서러워서 밤새 울며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정신 붙잡지 못한 내가 밉고 제일 중요한 시기에 전남친과 이별로 제대로 손이 잡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누구는 고삼을 다시 살라하면 못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고싶다 돌아가고싶을 정도로 후회하고 어린 내가 너무 싫다 몸만 크고 마음은 여전히 어린소녀가 있다 언젠가 후회할일은 분명있겠지만 이번 고삼인생보다는 덜 후회하고 싶다
대학 잘가고싶다 제발 인생 시발것 이 대한민국 교육정책을 다 갈아엎어버리고 싶다.
오노추 - 낭만젊음사랑(이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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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jaechan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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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chan's all self-composed songs, 1st mini album tracklist released
DKZ member Jaechan filled with his self-composed songs on his solo debut album.
On August 29, Jaechan released the track list image of the 1st mini album 'JCFACTORY'.
It is reported that "JCFACTORY" contains a total of 5 songs including the title song "Hello", "Oh Girl", "MAYB (feat. Nathania)", "Replay", and "Time".
As can be seen from "JCFACTORY", all the songs on this album are Jaechan's self-composed songs. Jaechan also composed some of DKZ's songs such as "Dreaming You", "Memories", and "Uh-heung".
Jaechan not only participated in the songwriting, but also directly participated in the overall production of "JCFACTORY". Before the release of the official album, the B-side song "Time" was released ahead of schedule on the 24th. This song directly reached the top of the global music charts, proving Jaechan's potential as a solo artist.
Meanwhile, Jaechan will release his first mini-album 'JCFACTORY' through various music sites at 6 pm on September 6th and make his solo debut for the first time.
Source: DKZ 재찬, 전곡 자작곡 미니 1집 트랙리스트 공개 - 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 - 뉴스엔 (newsen.com)
Translated by Park Jaechan Upd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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