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남부 수해 지원활동 지원활동(오타아님) 후기
2018년 7월 23일 라오스 남부 버라웬 고원지역에 건설된 쎄삐안-쎄남너이 수력발전 댐의 보조댐 D가 붕괴되면서 인근 앗따쁘에 큰 수해를 입혔다. 8월23일 현재, 사망자는 39명, 실종자는 97명 이상인 것으로 보고되었고, 13,100여 명에 달하는 수재민 중 4,270명이 이재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무너진 쎄삐안-쎄남너이 댐의 보조댐 D>
수해의 원인이 100% 댐 붕괴에 있는지 기록적인 올해의 강우량에 있는지는 진상규명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이 댐 프로젝트의 시행 컨소시엄에 한국의 SK E&C(시공 및 운영)와 서부발전 KOWEPO(운영)가 참여하고 있고, 라오스측 참여 지분 역시 한국의 EDCF자금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한국이 수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외긴급구호대 1진 출발>
그래서 한국 정부는 7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 해외긴급구호대KDRT를 파견하여 피해지역에 무상 의료 지원 서비스를 제공했고, KOICA는 의료진과 현지주민 간 의사소통 및 구호대와 라오스 정부측 간의 협의 지원을 위해 라오스에서 활동 중인 봉사단원과 현지직원을 현장에 파견하였다. 나는 코이카 OB단원 자격으로 여기에 참여하여, 8월 3~11일, 11~23일 2차례에 걸쳐 빡쎄-앗따쁘-사남싸이 현장에 나가 이들을 도왔다(그러니까 ‘한국 정부의 라오스 수해 지원 활동을 내가 지원한 활동’이란 말이 맞다).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었기에 간단하게(정말 나로선 추리고 추린 거니까 안 간단하다고 욕할 사람은 살며시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시오) 기록을 정리해두려 한다.
일단 앗따쁘가 어디 있는지부터 설명해야겠다. 앗따쁘는 라오스 최남단의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베트남, 남쪽에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평균 높이 1,000~1,350m에 달하는 버라웬 고원이 있어 고원지대에 내린 비는 쎄삐안강, 쎄남너이강, 왕아오강 등을 통해 쎄껑강으로 흘러들고, 쎄껑강은 캄보디아 스뚱뜨렝에서 메콩강과 합류한다.
<사남싸이 쪽에서 본 버라웬 고원>
앗따쁘에도 공항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으며, 주로 빡쎄를 통한 교류가 잦다.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빡썽-타땡-쎄껑을 거치는 16번-11번 국도로, 약 200km의 거리를 가는 데 3시간 정도가 걸린다. 빡썽에서 쎄껑-앗따쁘간 11번 국도의 중간으로 빠져나오는 지름길도 최근에 만들어져 45km, 약 30분을 단축할 수 있지만, 경사가 심하고 종종 산사태가 발생하므로 우기에는 주의를 요한다.
<빡썽에서 쎄껑-앗따쁘간 11번 국도로 나오는 길, 쎄남너이 강 범람 흔적이 다리에 역력하다. 이 인근의 다른 다리에서 구호물자를 나르던 앗따쁘행 화물차가 강에 빠져 운전자가 즉사한 바 있다>
<쎄삐안-쎄남너이댐 수력발전 사업>
현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쎄삐안-쎄남너이 댐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버라웬 고원에서 쎄삐안, 쎄남너이강을 통해 빠져나가던 물을 가두고 지하수로를 통해 낙차를 크게 만들어 발전하는 방식인데, 쎄남너이 호수의 용량을 늘리기 위해 쎄삐안 댐에서 물을 끌어오고, 또 쎄삐안 호수로는 후어이막짠 댐에서 물을 끌어와 세 개의 메인 댐이 한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쎄남너이 호수에 가둔 물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여러 개의 보조 댐들 중 하나가 7월 23일에 무너진 것이다. 원래는 수문이 있는 쎄삐안 댐과 쎄남너이 댐이 수위조절을 해서 쎄삐안강과 쎄남너이강으로 물이 흘러가게 되어 있지만, 보조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왕아오강 쪽으로 50억톤의 물이 쏟아지며 버라웬 고원이 끝나고 평야가 시작되는 앗따쁘도 사남싸이군 일대를 쓸어버렸다.
쎄삐안-쎄남너이 댐이 자리잡은 짬빠삭도도 일부 수해를 입긴 했지만, 버라웬 고원에서 내려온 물들이 모이는 쎄껑강을 끼고 있는 앗따쁘 저지대, 그 중에서도 왕아오 강이 지나는 사남싸이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50억톤의 물은 강의 흐름과도 무관하게 쏟아져들어와 1차로 사고 댐으로부터 약 20km 떨어진 반폰사앗을 덮치고는 40km 가량 하류의 반힌랏, 반사멍, 반타생짠을 거쳐 강건너 반마이, 반냐이태(콕껑, 타우안, 던무앙, 던복), 반타힌까지 치고 들어갔다. 이후 쎄삐안강과 왕아오강이 쎄껑강으로 합류하는 지역인 반솜뻐이, 반핫우돔싸이까지 범람하였다. 라오스 정부는 수해지역 피해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 위원회를 통해 8월 18-26일간 진행한 초기피해실태 일제조사에서, 수해가 가장 심각한 6개 마을로 반힌랏, 반타생짠, 반타힌, 반마이, 반사멍, 반냐이태를 꼽았고, 반따머엿, 반삔동, 반싸이던콩, 반폰사앗, 반넝캐, 반솜뻐이, 반핫우돔싸이 7개 마을을 그 다음으로 심각한 수해지역으로 보고하였다. (관련기사 : http://kpl.gov.la/En/Detail.aspx?id=38340 )
<홍수에 휩쓸린 반마이(‘새마을’이란 뜻)>
사실 현장에 가서 보면 앗따쁘에 홍수가 많이 나는 것은 지형적으로 당연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버라웬 고원이 케이크처럼 우뚝 솟은 가장자리에 케이크 접시처럼 자리잡은 쎄껑강 유역의 앗따쁘 평원에는 끊임없이 고원에서 내려오는 물이 넘쳐나고, 고원에 가로막힌 구름들도 이 지역에 ��를 더한다. 내가 현장에 내려가 있��� 17일 동안 단 하루도 비가 안 온 날이 없었다. 사남싸이 현장으로 출근하는 아침이면 늘, 버라웬 고원의 남쪽 절벽에 어제는 없던 폭포들이 새롭게 생겨나 고원 위의 물을 앗따쁘로 힘차게 내리꽂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출근길의 버라웬 고원>
<빡썽 지역에 있는 땃판 폭포. 이런 폭포가 버라웬 고원의 남쪽 사면에 즐비하다>
수해발생 초기에 7,000여 명에 달했다가, 이제 일부 귀가하고 4,270명 가량이 남은 이재민들은 크게 앗따쁘 시내 중심부와 사남싸이 중심부의 학교들, 반따머엿, 반삔동, 반복에 각각 설치된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남싸이 읍내 유치원과, 밋삼판 초등학교, 사남싸이 중고등학교 등 9월에 개학하는 학교에 설치된 캠프가 많아 학사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8월 6일자 앗따쁘도지사가 발표한 합의문에 따르면 이재민들의 임시거주지를 반따머엿, 반핫냐오 초등학교, 반삔동(텐트 이용), 반동박, 반던복 저지대(반냐이태)에 설치하고, 이주정착지로 반따머엿, 반타생짠 고지대, 반삔동, 반동박으로 정했다고 한다. 폐교된 반핫냐오 초등학교에는 SK가 이미 임시거주지 시설공사를 시작했다.
<사남싸이 중심부 길가에 들어선 이재민 텐트들. 나중에는 길 중간에까지 들어찬다>
<SK에서 지원한 이재민캠프 샤워시설>
이재민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갈지는 미지수이다. 어떤 마을은 몇 미터에 달하는 진흙이 가득 차 물이 빠지더라도 아예 복구가 어려운 곳들이 있다 하고, 토속적인 정서상 한 번 물이 들어 인명을 앗아간 장소에 돌아가기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재민 캠프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하고 집 주위 고지대에서 스스로 임시거처를 마련하고는,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진창길을 하염없이 걸어, 또는 경운기를 타고 집을 오가며 하나라도 건질 만한 것들을 건져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마이로 가는 길목에 유일하게 거주하고 있는 중국 상인. 텅 빈 동네에 혼자 들어와 살며 물건을 지키고 있다고>
반따머엿과 반삔동은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아 헬기로만 접근이 가능하기에 군청사 바로 옆의 넓은 공터에서는 하루 종일 헬기 한대가 분주히 왔다갔다 하며 구호품을 실어 나른다. 헬기착륙장 근처는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런저런 소문도 무성하다. 헬기가 도착할 때마다 현지인들은 혹시 시신을 수습해 온 게 아닐까 하고 목을 빼서 구경하기도 한다. 반복 캠프도 가는 길이 거의 진창이어서 사륜구동차도 종종 구덩이에 빠져 고초를 겪는다.
<그냥 진창도 아니고 차가 지나가는 데 파도가 인다>
구호품들은 1차로 앗따쁘 도청에서 관리하고, 사남싸이 현장에서는 군청이 청사 경내에 종합상황실을 만들어놓고 관리한다. 개인적으로 기부하기에는 사남싸이 군청 종합상황실의 접수처에 기부물품을 등록하고, 인근 캠프에 직접 배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같았다. 활동 초기에 이재민들이 가장 원하는 구호물품이 뭔지를 조사했는데, 여성들의 전통치마 ‘신’이 기지원된 구호물품에 없어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다. 코이카를 통해 받은 기부금과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기부금(과외순이가 보내온 신도 포함)을 합쳐 1,300여 장에 달하는 신을 마련하고, 종합상황실에서 배포방법에 대해 협의했다. 우리가 계속 현장에서 활동하던 믿음직한 단체여서 그런지 몰라도, 캠프에 직접 배포하겠다고 하니 안내할 직원까지 하나 붙여 주며 오히려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 배포하는 데는 인력이 또 필요하고 그 수고를 우리가 덜어준다니 반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기증물품을 들고 가 접수처에서 기부자, 기부금액, 품목, 총 수량 등을 등록하고 나면 설치된 배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감사패를 받는다.
<기부물품 기증식과 감사패 수여식을 전광석화처럼. 유니폼 아닌 사람들은 다 우리 임차차량 기사님들이다>
<캠프에서 전통치마 신+후원받은 분유+어린이 영양제 등 배포>
<이분들은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이재민들로, 댐붕괴가 아니라 어제 내린 비로 논밭이 물에 잠겨 옆동네 친척집으로 피난가는 분들이라 한다. 신 치마를 싣고 가던 기사님이 이분들한테도 좀 나눠주자고 제안해서 즉석에서 신 기증식 거행. 저 장대에 메고 가는 짐들이 재산의 전부라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현재 각 캠프마다 식료품이나 생활용품 등은 충분히 전달이 되고 있다.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과 모기 매개 전염병도 현재로서는 위험이 크게 높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교실 하나에 열몇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등 생활환경이 열악한 부분을 어떻게 빨리 개선을 하는가가 관건인데, 임시거주지로 지정된 곳들 중 아직 도로가 제 기능을 못하는 곳들이 있어 거주시설 건설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계속되는 비로 실종자 수색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핸드폰이며 뭐며 아무 것도 없는(수해로 잃어버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는 사람이 대부분) 주민들이 반따머엿과 반삔동처럼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캠프에 떨어져 있어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실종자로 집계되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수해를 입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한 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길조차 복구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려야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뒤쪽으로 SK에서 짓고 있는 150가구 규모의 이재민 임시거주지의 골조가 보인다>
군청 종합상황실에는 매일 들고 나는 수해지원 관련 단체 인원들을 체크하고, 현안에 대한 협의, 조정, 연락 등을 위한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군수실 입구에는 “면담은 15분 이내로” 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당연하게도, 한가한 사람은 한가하다. 자원봉사자들이 구호예산으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도 군청 경내에 설치되어 있어 이재민은 물론 구호관련업무 종사자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뒤쪽 파란 간판에 “앗따쁘도 사남싸이군 수재의연품 기부처”라 적혀 있다>
1진에서 3진까지 파견된 한국긴급구호대와 1-2진으로 나누어 참여한 KOICA 단원들은 활동기간 내내 2~30명 이상의 인원을 유지했기에 현지에서 숙소 구하고 생활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급구호대 선발팀이 와서 현장세팅을 하고 초기진료를 시작한 2-3일 짧은 기간 동안에는 사남싸이 현장병원 근처에 숙소를 구하고 지내기도 했지만, 안전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앗따쁘 시내에서 지내며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30km 남짓한 시내-사남싸이간 18번 국도는 날씨 제일 좋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나 1시간 정도에 주파할 수 있었고, 11개에 달하는 나무다리들은 수시로 물에 잠겨 출퇴근길을 위협했다. 계속된 비로 마를 날이 없는 비포장 진창길에 사륜구동 이외의 차는 들어설 엄두조차 못 내는 형편이었다(17일간 세단차량 들어온 거 딱 한 대 봤음. 우리 기사님들 막 박수쳐줌). 다리가 물에 잠긴 며칠간은 앗따쁘 시내-침수교 1 구간을 도 보건국과 SK지원 차량으로, 침수교 1-침수교 2 구간은 대기시켜 둔 구호대 임차차량으로, 침수교 2-현장병원 간은 사남싸이군 보건국 및 SK 현장사무소 지원차량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차를 갈아타고, 차례를 기다려 배로 개울을 건너고 하느라 출퇴근 시간은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수륙양용차 아님. 강 아님. 트럭이 다리 건너는 거임>
<수륙양용차 아님. 바다 아님. 픽업이 다리 건너는 거임>
<배 묶는 말뚝 아님. 3톤 이하만 지나가라는 다리하중제한 표지판임>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되면 4시 무렵 진료를 마칠 때까지 짧은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걷고, 이야기하고 하는 일의 연속이다. 긴급구호대 의료진에 코이카 단원이 한 명씩 붙어 환자와의 통역을 맡고, 나는 깍두기처럼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의사소통의 갑갑한 대목을 뚫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가끔 결핵 등의 관리대상 전염병 의심환자가 생기면 인근 군립병원이나 도립병원으로 이송을 의뢰하는 것도 해야 하고, 도청 관계자들이랑 보건당국이랑 회의가 있으면 거기도 가서 통역해야 한다.
<환자와 구호대 의료진 사이에 코이카 봉사단원 또는 OB>
<SK랑은 한국말로 회의해도 되니까 나는 사진을 찍고>
<결핵원, WHO랑은 라오어나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니까 나는 통역하고>
<부총리가 불시에 습격해와도 꿀리지 않고 통역해야 함>
<아침마다 소랑 염소들이 싸질러놓은 똥치우는 것도 큰 일임>
<꿀같은 점심시간에는 조금 쉬어 줘야 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도 끝난 게 아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회의에도 참여해서 내일 일정도 확인해야 하고, 지친 단원들을 위무할 팩소주도 살금살금 풀어야 한다. 더 깊은 밤에는 졸린 눈을 부비며, 이 일이 터지기 전에 받아놓은, 수도 복귀 다음날이 마감일인 번역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회의도 안 하는데 나는 왜 심각한가>
그렇지만 피곤하고 불안한 얼굴로 대기용 의자에 늘어져 있는 환자들을 보면 내가 풀어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젖먹이랑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애를 데리고 온 젊은 아빠는 자꾸 허둥지둥 하는 게, 이렇게 둘을 안고 걸리고 해서 다니는 게 영 어색해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물어보니 엄마가 이번 수해에 죽었다고. 마음이 툭, 떨어졌지만 그냥 모른 척, 덤덤하게 접수 차트에 ‘이재민’으로 분류하고는 다음 차례의 환자로 넘어간다. 평생에 처음 현대식 병원을 와 본다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4주간 우리 긴급구호대 현장병원을 찾은 2,430명의 환자는 2,430개의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필리핀 태풍이나 네팔 지진 같은 세계의 재난 현장 경험이 풍부한 긴급구호대의 전문가들은, 이재민보다 지병을 호소하는 일반인 환자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에, 이 활동이 긴급구호보다 무료 의료 봉사 성격을 더 띠게 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나나 코이카 단원들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진료하고 그게 그들의 가긍한 삶에 티끌만큼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대상이 누구든 활동의 성격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진료 개시도 전에 벌써 대기환자는 만석>
<너의 어깨에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면>
7년간 카페노마드를 해 오며, 점점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은 날들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이 8월은 꽤나 다르게 지낼 수 있었다. 살이 좀 빠지길 은근 기대했지만, 몸쓰는 일을 간만에 한 탓에 삼시세끼 꼬박꼬박 식욕이 너무 돌아 그런 쾌거까지 달성하진 못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코이카 단원들은 엉뚱하고 모난 듯 하면서도 어딘가 무른 심성이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란 사실을 확인했고, 인간들과 함께 하는 일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다시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기습 방문한 총리한테 잡혀서 못 빠져나오는 바람에 도지사가 마지막 기증식을 계속 미뤄서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것만 빼면 전투태세가 갖춰진 라오 사람들이랑 일한 것도 아주 드문(앞으로도 드물) 경험이었다. 회의 한 번에 부지사, 군수, 사무국장의 직통 핸드폰 번호를 따내기가 어디 쉽겠나. 그만큼 라오스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나름의 방식으로(모눈이 그려진 하드커버 회계장부에 모든 것을 기록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였다.
<우리가 경내에 현장병원을 차렸던 사남싸이 군립병원 본관. 원래 있던 3명에 중앙에서 파견나온 7명을 더해 10명의 의사가 24시간 무교대로 근무하며 넘쳐나는 환자들을 보고 있다. 병실도 모자라 급히 지붕을 치고 주변 절의 스님들이 본인들 쓰던 침상을 모아 기증한 걸로 임시 병실을 꾸며 두었다>
<문제의 마지막 기증식과 도지사. 여전히 “무료로” 통역을 하고 있다. 나 비싼데>
빼놓을 수 없는 건 우리의 임차차량 기사 아저씨들. 물에 잠긴 다리 때문에 아무 것도 없는 중간 구역에 갇혀, 애먼 민가 구석방을 하나 빌려 여럿이 며칠을 함께 지내도 불평하지 않고 늘 깔끔한 모습으로 다리 건너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던, 신 치마를 나눠주러 캠프들을 돌 때는 이재민들이 자기 친척들이라도 되는마냥 너무도 기뻐하며 발벗고 뛰어다니며 신나게 도와 주던. 그리고 코이카 사무소의 너이, 피숑, 아난, 캄펭. 사실 한국 정부가 라오스에 보내는 ODA 자금만큼 우리는 라오스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지내는 게 아닌가 싶다. 뭐 너무 감상적이고 정성적인 평가일진 모르겠지만 기꺼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주는 이들이 없었으면 우리 한국 사람들만으론 아무 일도 못 했지 않을까.
<우리 므째이 기사님들이랑 마지막날 회식>
여튼 간만에 인류애를 좀 충전하고 돌아왔다. 한국긴급구호대원들, 코이카 사무소 직원들, 단원들, OB들, 기사들, 앗따쁘 사람들, 그리고 물심양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친구들, 다들 멋졌고 고마웠다. 당분간은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보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사족.
긴급구호대 활동 사진들 중 웃는 얼굴이 나왔다고 상황이 엄중한데 웃고 자빠졌냐는 악플을 어디선가 누군가가 달았다는데, 어떤 화상인지 찾아내갖고 통통 뚜디리패서 평생 못 웃게 앞니를 홀딱 뽑아 주고 싶다. 힘들수록 웃고 유머로 서로를 북돋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 중 큰 부분이었다.
<이런 우거지상들을 2주 내내 서로 보고 있으면 일할 맛이 나겠느냐고>
<이게 훨 낫지 않어? (꿘코디 웃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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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vocab week 7
빡치다~ adj. to be pissed off, furious
•••••"그냥 그런가 보다" ~ “I guess so.”
한가하다~ adj. to be free (time wise)
소중하다~ adj. to be precious , valuable , dear
대단하다~ adj. 1. to be huge, enormous, immense, tremendous; *2. to be outstanding, awesome, incredible, great; 3. to be important, serious (날씨) intense
알아듣��~ vb. 1. to recognize, make out ; 2. understand, follow, get (understand)
금방~ adv. soon, shortly, any minute
인칭~ person (1,2,3인칭= 1st/2nd/3rd person {pov})
잠들다~ vb. *1. to go to sleep, get to sleep, fall asleep ; 2. to pass away, die (euphemism)
거리낌~ n. hesitation, qualms, scruples, compunction
어색하다~ adj. to be awkward
시원하다 (시원시원하다)~ adj. *1. to be cool (temperature) ; 2. to be refreshing ; 3. to be straightforward
화해하다~ vb. to reconcile, make up
화해~ n. reconciliation (with/between)
충분하다~ adj. to be sufficient, enough, ample, satisfactory
예를 들다~ vb. to give an example
BONUS: 즐 - (slang) buzz off, f- off [as one can imagine, it’s pretty rude]
* = how it was used in my situation where i came acros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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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𝒅𝒂𝒚 𝒐𝒏𝒆 𝒓𝒆𝒄𝒂𝒑
제 친구는 휘사원이에요. 그 친구는 너무 바빠요. 그래서 전희는 보통 주말에 만나요. 만나면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요.
My friend is a company employee. She is very busy. So, we usually meet on the weekends. When we meet, we either watch a movie or go to a café and drink coffee.
나 - I, me
저 - I (polite)
제 - I, my (polite)
내 - I, my (casual)
너 - you (casual)
회사원 - company employee, office worker
회사 - company
일하다 - to work
너무 - too, very
너무 바쁘다 - to be very busy
너무 예쁘다 - to be very pretty
바쁘다 - to be busy
요즘 바쁘다 - to be busy these days
바쁜 사람 - busy person
바쁘게 - busily
한가하다 - to be free, to be not busy
우리 - we, our
우리 나라 - our country, my country
우리 집 - our house, my house
우리 학교 - our school, my school
저희 - we, our (polite, excluding the listener)
보통 - usually, usual, regular
보통 때 - usually, normally
보통 사람 - regular person
주말 - weekend
이번 주말 - this weekend
주말에 - on the weekend
주말마다 - every weekend
쉬다 - to rest
평일 - weekday
만나다 - to meet
우연히 만나다 - to bump into
못 만나다 - to not be able to meet
안 만나다 - to not meet
헤어지다 - to say goodbye, to part
영화 - movie
영화를 보다 - to watch a movie
영화관 - movie theater
주인공 - main character
영화배우 - movie actor/actress
카페 - café
카페에 가다 - to go to a café
커피 - coffee
차 -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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